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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추억의 초등학교교과서 전시회(주후 2017년 5월 12일)

밀알공동체 시나브로 2023. 2. 13. 14:20

4 26일부터 7 30일까지 대구 근대역사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는 한국 근현대 교과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나는 지난 5 12, 서문교회에서 목욕을 하고 경상감영공원 옆의 대구 근대역사관으로 향해 큐레이터의 도움으로 2층 전시실에 도착하니, 기억에는 아련하지만 낯익고 손떼묻은 교과서들, 그리고 개화기 초기의 교과서들이 나를 반가이 맞아주어, 그 교과서들로 공부하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44~45년전의 초등학교 교과서들을 보니, 콧물 흘리며 선생님을 따라 국어책 더듬,더듬 읽는 어린 우리들의 모습이 50이 훌쩍 넘긴 내 눈앞에 떠올라,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방울이, 그러나 내 입에는 미소가 살며시 번졌다.

스마트 폰으로 찍어왔기 때문에, 내 폰안에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 , 우리, 우리나라, 대한민국, 가자, 기영아, 순이야,.......*

이 내용은 1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 1(제목~우리나라, 대한민국) 2(제목~우리들은 1학년)의 내용이다.

입학하자마자, 첫 번째로 수업한 내용이다.

초창기(1학년~3학년 교과서)에는 마침이 *~읍니다,/~입니다.*에서, 4학년 부터는 마침이 *~하였다,/~이다.*로 바꿨다.

60,70년대 교과서만이 아니라, 개화기 초기의 희귀한 교과서들도 눈에 띄어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어.......

*국어, 산수, 사회, 자연, 바른생활(도덕), 실과(4학년~6학년), 국사(5학년,6학년), 음악, 미술*

교과서들과 피아노(그때는, 풍금이라 칭했음), 겨울의 필수품인 난로까지, 60,70년대 우리들 교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장애를 입어서 특수학교에 다녔지만, 교육과정은 일반학교에 다니는 건강한 어린이들과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

국어시간에는 때때로 받아쓰기 시험도 쳤으며, 산수시간에는 구구단도 외우고 방정식도 풀었다.(특히 방정식은 4학년부터 나왔으며, 짝꿍(효정이)의 도움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하였다.)

1학년 담임이 이 학영 선생님이셨는데 바른생활 과목으로 수업하실 때에는, *장애로 인해 혹 있을지도 모를 우리들의 무절제한 생활을 경계하시며 더욱 더 절제하며 올바른 생활을 강조하시며, 그래야 건강한 사람들도 장애로 인해 우리들을 무시하지 않고 우리들을 그들과 같은 소중한 인격을 가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할 것*이라고 늘 강조하셨다.

그 시절에는 방학 전에 신학기 교과서들을 선생님들께서 나누어주시어, 방학기간에 예습하도록 하셨다.

일단 냄새로 신학기 교과서들이 학교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덜해진 표지가 아니라, 손을 잘못 대면 빳빳한 표지에 손이 비일 정도로 빳빳한 표지, 그리고 그때까지 잘 볼 수 없었던 컬러 삽화까지...

그리고 어머니들께서는, 교과서들을 주로 달력으로 입혀 주시는 것이 각 가정의 풍경이었지, 아버지들께서도 도와주시곤 하셨지.

벌써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 신학기 교과서들 표지가 너덜,너덜 해졌는가의 여부로, 공부 잘 하는 친구들과 농땡이(?) 친구들로 명확히 갈라졌다.

나는 특히 산수에 매우 취약해 산수숙제를 할 때면, 참고서 도움을 톡톡히 보기도 했었지.

당시 국어책속의 삽화는, 70년대의 우리들이 살던 동네와 골목풍경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었지.

나는 2년 늦은 주후 1974년에 보건학교에 입학하여 주후 1986 2월에 졸업했으니깐, 서슬 퍼렇던 군부독재 시절에 (원하든, 원치 않았든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그것도 주입식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은 셈이다.

지금은 초등학교도 검인정 교과서로 수업하는지 모르겠는데, 70,80년대 특히 초등학교는 100% 국정교과서로만 수업이 진행되었다.

우리 보건학교에서는 일반초등학교와는 차이점이 있었는데, 4학년 부터는 과목 별 담당선생님들께서 수업을 진행하셨다.

일반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졸업까지 담임선생님들께서 수업을 진행하셨으며,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 과목 별 담당선생님들께서 수업을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다.

초등학교에서의 실과 과목이, .고등학교에서는 남학생은 기술과목으로, 여학생은 가정과목으로 분리되어 수업이 각각 진행되었다.

나는 그때 옥란이와 짝이었는데, 기술/가정 수업시간만 되면 우리 둘은 이별 아닌 이별의 고통을 겪으며(?) 다른 교실에서 수업하는 아픔도 있었다.

그리고 기술/가정 수업시간이 끝나면, 여학생들은 다시 교실로 돌아와 반가움 속에서 다음 수업시간을 준비하는 중에, 가사실습으로 만든 샌드위치 등을 짝인 나에게만 주던 옥란이의 우정어린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런 추억의 전시회를 마련해 주신 대구 근대역사관 관계자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기간이 7 30일까지이니깐, 궂은 장마가 오기전에 몇 번은 더 가볼 계획이다.

                      

                               * 마 라 나 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