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두란노서원 발행)주후 2003, 2004년 생명의 삶 한절묵상

밀알공동체 시나브로 2023. 2. 2. 13:45

* 1:1,2*~>이 전투의 결과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우선 명백히 해 두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은, 어떤 경우에도 위험에 절대 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적전투에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부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적을 패배시키셨습니다.

*티모씨 워너(영적전투 저자, 전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교수님)*

* 1:21*~>가나안족속의 멸절은, 그분(=*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축복하기 위한 길을 예비할 목적으로 그분(=*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따라 그분(=*하나님*)의 백성의 손을 빌려 행하진 심판이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백성이 그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다면, 가나안족속의 우상숭배와 보수죄악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가증스런 일인지 이스라엘백성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순종했으며, 그래서 그런 깨우침을 얻지 못했습니다.                                              *W.S 후톤(청교도 설교가)*

* 1:23~26*~>잘 익은 열매에 있는 벌레 한 마리처럼, 타협의 정신은 이미 벧엘에서 이룩한 이스라엘의 성공 한가운데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읍은 공락되었으나, 정보를 알려준 가나안사람은 살아남아 또 다른 루스를 건설합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그를 선대하여 놓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보수의 악과의 서약, 화해입니다. 하지만 진보의 의와 꼴통보수의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진보의 빛과 꼴통보수의 어둠이 어찌 사귀겠습니까?*고후 6:14,15*

                                                   *마이클 윌코크(성경주석가)*

* 2:8*~>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영적지도자는 하늘이 세우고 하늘이 끝나게 합니다. 지도자의 길은, 하늘의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세우심의 소명도 알아야 하고, 종말의 소명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우리는 가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끝내라 하실 때, 순종해야 할 뿐입니다.

                                                  *이 중표(한신교회 원로목사님)*

* 2:17,18*~>보수의 죄 용서와 회복과 새로운 승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하고 굴욕적인 패배는 없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드려야 합니다. 어떠한 실패도, 최종적인 것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패배로부터 회복하여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면, 보수의 죄와 보수사탄을 상대로 하여 싸움을 하다가 패배를 맛보는 우리에게 커다란 격려가 됩니다.

                                      *J. 오스왈드 샌더스(OMF 이사, 설교사역자)*

* 3:8*~>옷니엘 시대에 *여호와*, 단지 사사만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않으시고, 이방 왕인 구산 리사다임도 이용하셨습니다. 사사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수단으로 쓰신 반면, 이방 왕은 이스라엘의 보수의 죄를 징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방 왕들과 이방나라들의 흥망성쇠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일과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김 지찬(총신 신대원 구약학 교수님)*

* 4:4*~>여성이 남성보다 대우를 못받고 무시당하던 타락한 보수시대에, *하나님*은 여성인 드보라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이끌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 인간적으로 보기에 능력있는 사람들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일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 자, *소외된 자*를 택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까? 사도바울의 말처럼,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고전 1:26~31*.                                                   *필립 얀시(Christianity Today 편집장)*

* 4:22,23*~>*하나님*께서는,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자들=보수꼴통주의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걸하며, 아주 작은 기회가 주어져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싸우는 사람들=진보주의자들을 축복하여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으로 삼으십니다.

                                                                  *김 서택(대구 동부교회 담임목사님)*

* 5:2,3*~>찬송은, 감사에서 비롯됩니다. 감사는, 값없이 받은 은혜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입에서 감사의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신앙의 척도는, 감사와 찬송에 있습니다.

                                                        *하 용조(서울 온누리교회 원로목사님)*

* 5:23*~>메로스가 저주를 받은 이유는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메로스 없이 일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메로스가 와서 *여호와*를 돕기 원하셨습니다. 메로스가 저주를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하라고 하셨을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뜻을 아는 종이, 그 뜻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D.L 무디(복음전도자)*

* 6:7~9*~>*회개*외에,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 줄 방패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불가시적인 무적의 능력입니다. 따라서 그 어떤 검이나 창으로도 뚫을 수 없고, 그 어떤 요새나 참호로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회개*외에는,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토마스 아담스(청교도 신학자)*

* 6:15,16*~>기드온은, *여호와*께서 왜 자기처럼 천한 자를 사용하고자 하시는지 의아해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는 전쟁의 결과가 수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실 *여호와*께 달려 있음을 말합니다. 언약을 파괴한 백성들임에도 *하나님*께서 계속 은혜와 자비를 보이시는 것은, 언약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그분(=*하나님*)의 자비와 통치가, 언제나 승리를 거둡니다.

                                                        *S. 그라이프(*약속 그리고 구원* 저자)*

* 6:39,40*~>(=*진보*)믿음은, 한쪽 눈을 멀게 하는 유혹을 늘 받으면서도 두려움을 초월해 나갑니다. 기드온은, 유약하고 흔들리기 쉬운 성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그를 상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에게 징표를 보여 주셨고, 그의 불안정한 마음을 진정시켜 주셨습니다.

                                                    *고든 케디(스테이트대학 개혁교회 목사님)*

* 7:4*~>군인이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느냐? 손으로 물을 핥느냐? 하는 2가지 방법은, 극히 작은 차이에 불과한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항상 이렇게 평범하고 작은 것을 가지고 우리가 어떤 큰일에 적합한 자인가 하는 문제를 시험하시고 결정하십니다. 우리는 행하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한 오늘의 일에 놀라운 미래의 영예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J.R 밀러(신학자)*

* 7:17,18*~>*우리주님*의 명령은, 때때로 이상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그런 명령을 하신 이유나 그 명령을 따를 경우에 나타나는 결과를 항상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 그 명령은,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순종은, 그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허드슨 테일러(중국내륙 선교회 창시자)*

* 7:19,20*~>미디안을 치러 간 기드온과 300의 병사들은, 군 역사상 최악의 전력차이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병력은 300명밖에 되지 않았으며, 무기라고는 부족한 것들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했습니다. 믿음생활에는, 역설이 존재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며, 찬양을 받고 높아지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스튜어트 브리스코(엘름브룩 교회 은퇴목사님)*

* 8:3*~>우리는 평화의 말, 관계를 회복하는 말, 그리고 연합과 일치를 격려하는 말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리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연합과 일치 속에서 구원사역을 이루시고자 함입니다.        *폴 트립(웨스터민스터 신학대학원 실천신학교수님)*

* 8:14*~>기드온이 그 전투에서 승리하고 되돌아왔을 때, 그들이 처벌을 당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오늘날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것을 따르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과 또한 그것의 필요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방선교의 성공 여부에 대해 뚜렷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기독교인과 같습니다.               *어빙 L 젠센(성경주석가)*

* 8:34*~>기드온이 죽은 후,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기드온을 사사로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람만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기드온이 죽자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김 인환(지구촌교회 목사님)*

* 9:9*~>*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한다는 감람나무의 고백은, 우리 생에 있어서 최대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말해 줍니다. 감람나무처럼 유혹에 부딪칠수 있지만, *나의 기름을 버리는 일, , 성도가 거룩한 생애를 떠나는 일은 없어야*합니다.* 6:68*. 이는 아무것이라도, *여호와*를 버리는 것에 보충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는 것은, 수치와 죽음뿐입니다.* 17:13*.                                        *조지 허버트(영국 목사님, 형이상파 시인)*

* 9:24*~>모든 거부는 그에 상당하는 보상, 모든 사상은 그 결실을, 모든 고난은 영광을 가져다 줍니다. 비열한 짓은 자신에게 돌아오고, 보수꼴통의 악은 누구라도 거기 빠진 사람을 헤치며, 관대함은 사람을 위대하게 하며, *진보*의 선은 자기를 높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외상으로 살아가라고 요구하지 않으시며, 그분(=*하나님*)은 우리가 일한 만큼을 갚아주십니다.*

                                                                         *존 마일드메이(영국 교회 성직자)*

* 9:29*~>교만한 자는 사람이든, 뭐든 깔보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깔보기만 하다 보면, 그 위에 있는 것을 볼 수 없게 됩니다.

                                                              *클리브 스테이플 루이스(영국 목사님)*

* 9:56*~>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오만한 자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줍니다. *진보진리*를 행하며, 청렴하며 고결한 삶을 사는 것은, 리더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오만한 삶이라는 우상을 따르기 위해 *진보진리*와 고결함을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습니다. *하나님*, 보수불의와 보수부정을 행하는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그의 머리에 맷돌을 던질 사람을 찾으십니다.

                                                               *질 브리스코(Just Between Us 발행인)*

* 10:6*~>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절대적 소유권을 드리는 일만은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한 분께만 전폭적 충성을 약속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지만 주중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리가 거의 혹은 전혀 없습니다.

                                                                                *드와이트 L 무디(복음전도자)*

* 11:11*~>입다는 길르앗과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본처 자녀들로부터 쫓겨나 멀리 요단강 동쪽 돕 땅에 피난하여 살았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며 소외된 약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남에게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상대방에 대해 화를 품지 말고, *하나님*께서 환경을 바꾸어 주실 때를 기다리며, 나를 훈련(연단)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주 경로(헤리슨버그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님)*

* 11:21*~>*우리주님*, 전쟁에 능하신 *주님*이십니다. 그의 성도들은 *주님*께 도움을 구하며, *주님*은 그들의 원수에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하심으로써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마크 스트롬(오스트레일리아의 목사님)*

* 11:36,37*~>입다가 그의 딸을 과연 번제로 드렸느냐, 아니냐의 논쟁에 대해서는 각각의 입장이 있겠지만, 어떤 입장에서든 입다의 딸의 태도는 훌륭합니다. 당시로서는, 아이도 낳지 못하고 처녀로 죽는다는 것이 커다란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의 맹세에 자신을 복종시켰습니다.

                                       *드웨인 린지(달란스 신학교 교수님, 성경주석가)*

* 12:3*~>입다는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셨으므로 내가 이긴 것이지. 내가 스스로 힘이 있어서 이긴 것은 아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일에 대해 너희가 어찌하여 항의를 하는가?* 이렇게 입다는 암몬 자손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 *하나님*과 그분(=*하나님*)의 은혜를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상기시킵니다.

                                                                          *김 홍전(전 성악교회 담임목사님)*

* 12:8,9*~>입다가 죽은 후, 3명의 사사가 잇따라 나타나는 데 우리는 그들의 이름 외에는 특별한 행적에 대해 거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입산이 아들들을 위하여 타국에서 여자 30명을 데려왔다는 사실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왕 같은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려는 열망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과는 다른 어떠한 것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S. 그라이프(*약속 그리고 구원* 저자)*

* 13:1*~>이스라엘은, 주기적으로 보수의 죄를 되풀이하면서, 점차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의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수의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혹시 보수의 죄의 악순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분(=*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구하십시오.

                                                                   *브루스 윌킨스(WTB 선교회 설립자)*

* 13:18~20*~>*기묘*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이해를 넘어서는*이란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기묘*라는 의미는,  **여호와*의 성품이 인간의 어리석은 이해를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곧 이적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기묘하신 분인가를 보여 주십니다. *기묘*라는 단어와 *이적을 행하다*라는 단어는, 어근이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자기 백성을 위해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십니다. 여러분도 기적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께 엎드려 경배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김 지찬(총신 신대원 구약학 교수님)*    

* 14:3*~>삼손이 불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14:1*, 부모에게 말합니다. 여기서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그 여자는 내 눈에 좋다*라는 의미입니다. 삼손은, 자기 눈에 선한 것만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좋은 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좋지 않았습니다.

                                       *케이 아더(미국 개혁신학교 조직신학 교수님)*

* 14:16,17*~>삼손의 실패 원인은, 나실인으로서 이스라엘의 여인 대신 이방여인을 사랑한 데 있었습니다. 그는, 딤나에 거주하는 불레셋 여인과 이방의 풍속대로 결혼했습니다. 그는 모태에서부터 나실인으로 태어나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진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함*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 경로(헤리슨버그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님)*

* 15:4,5*~>실로 삼손은, 초자연적인 은사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여호와*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을 때 그는 사자와 맞서 싸웠으며, 혼자서 적의 군대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날의 행실이 보여주듯이,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엉뚱한 곳에 사용했습니다.                     *필립 얀시(Christianty Today 편집장)*

* 15:19*~>*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성령*의 능력이 고갈되어 지쳐 쓰러지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다시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때는 무조건 *하나님*앞에 달려가서, 지금 내가 지쳐 있으며 소진되어 있다는 것을 고백하며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치 삼손 앞에 생수가 터졌듯이,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역사가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김 서택(대구동부교회 담임목사님)*

* 16:1,4*~>(=삼손)는 이미 한 여자로 인해 문제를 일으켰었는데, 이제 또 다시 일을 벌이며 적의 지경 깊숙이 여행을 합니다. *하나님*은 또 다시 적에게 잡힐 뻔하게 하심으로 그에게 경고하셨으나, 삼손은 회개하기를 거절했습니다. 들릴라가 그의 생활에 개입한 것도 이때입니다. 소렉 골짜기는 그의 집 근처에 있었으며, 삼손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던 것입니다.                                                  *워렌 W. 위어스비(강해설교가)*

* 17:6,10*~>혼합보수 신앙은, 이단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외면할 것입니다. 혼합보수 신앙은 사실, 너무나도 강력하면서도 매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시대정신 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참된 최고의 존재가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면서도, 재물이나 다른 어떤 것들을 또 다른 주인으로 섬기는 혼합보수 신앙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건창(성균관대 교수님, 문화사역자)*

* 18:5,6*~>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살펴보면, 정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복되시고 영원하시고 절대적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이름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의 발에서 신을 벗어야만 한다는 것은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강해설교가)*

* 18:19,20*~>우상들, 즉 좋은 것들이지만 잘못 경배되고 있는 것들에게 얽매이기란 참으로 쉽습니다. 당신의 시간과 재물을 투자하는 것, 당신이 말하는 것, 당신의 마음이 계속해서 그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당신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신의 *주님*이자 *구세주*이신 분은,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길 원하십니다.                                      

                                                                  *찰스 스윈돌(달라스 신학교 총장님)*

* 18:31*~>우상은, *하나님*께서 가장 증오하시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믿기는 하는데, 대상을 바로 갖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우상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그 우상이 무엇인지 *하나님*앞에서 초고속으로 속히 뽑아내야 합니다.                                                       *이 종윤(서울교회 담임목사님)*

* 19:1*~>보수의 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끌어내며, 거룩함과 순종의 길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이때 보수의 죄는, 우리의 정신에 작용합니다. 분별력, 판단력, 결단력으로서의 정신은, 영혼의 눈으로서 행동합니다. 그것의 인도함이 없으면,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존 오웬(청교도 설교가)*

* 19:22*~>성경 전체에서 이것과 비교할 수 있는 본문은 소돔과 고모라이지만, 그곳은 이교도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의 혼란 속에는, 무분별함과 어리석음과 불신과 불순종 다음으로 나오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성읍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명백한 사악함입니다.

                           *마이클 윌코크(성 니콜라스교회 담임목사님, 성경주석가)*

* 20:12*~>만약 여러분이, 한 가지 보수의 죄에 대해서 눈을 감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보거든 그 사람에게 가십시오. 가서 아무리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더라도, 그 죄를 지적하고 끄집어내십시오. 절대로 봐주거나 동정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마음, 교회의 마음 문을 걸어 잠그는 보수의 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오늘날에는 너무나 적습니다. 아니 아예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보수의 죄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회개를 촉구하는 목소리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진보복음주의 순회설교가)*

* 20:27,28*~>*믿음*이란, 자기성취라기보다는 **그리스도*안에서 자기포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의 *신뢰*를 의미합니다. *믿으면, 진정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순종하며 그 명령대로 따르게*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바라보고, 결코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인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 용조(서울 온누리교회 원로목사님)*

* 20:48*~>보수의 죄가 죄인과 흥정하는 삯은, 생명과 쾌락과 이익입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보수의 죄가 그에게 지불하는 삯은, 사망과 고통과 파멸일 뿐입니다. 보수의 죄의 거짓됨과 속임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약속과 지불하게 될 삯을 함께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버트 사우스(영국 신학자)*

* 21:2*~>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이스라엘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피상적이며 형식=보수적으로 지켰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복수의 열심히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떳떳하지 못한 해결책을 강구했습니다. 자기의 죄에 대한 무감각, 그리고 보수형식주의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법입니다.

                                                                       *코넬리스 반더발(성경주석가)*

* 21:18*~>야베스 길르앗과 실로에서 행한 행동이 서원을 깨는 것보다 더 나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서원을 깨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사람들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옳으냐는 물음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동기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 다른 모든 관계보다 우선하며 그것은 언약을 지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피터 브로우톤(위트리대학 구약학 교수님)*

 

*삼상 1:6*~>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는, 자녀를 낳지 못하는 한나에게 무례한 말을 하며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가정불화를 일으키길 원치 않았던 한나는 심한 학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브닌나에게 결코 원한을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기도의 여인 한나는, 결국 온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알란 스트링펠로우(신학자)*

*삼상 1:10,11*~>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하나님*앞에 아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만큼 *성령*께서 생명력을 주신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말을 더듬거리고 문장이 연결되지 않더라도 *마음이 진실*하다면, 그래서 그것이 잘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오른다면,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실 것입니다. 너무 무거워서 인간의 언어로는 옮겨나를 수 없는 기도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말 대신 마음만 드리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찰스 스펄전(진보복음주의 설교가)*

*삼상 2:7*~>*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좋은 것을 주시기도 하시고, 주신 것을 거두어 가시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어떠한 시련과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는 줄 알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역경의 시기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만드시며 겸손과 인내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도록 하십니다.                                *김 연택(인천 일심교회담임목사님)*

*삼상 2:17*~>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아야 할 만큼 알지도 못했고 **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 4:24*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사무엘상은 이처럼, 영적인 보수암흑과 실패의 반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백성을 구해 내시어, 자신의 목적과 계획으로 옮겨 가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있습니다.

                                                    *케이 아더(프리셉트 국제본부 창설자)*

*삼상 2:30*~>*말씀* **안에서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은 얼마나 밝은 영광을 우리의 길에 비추어 주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선하신 뜻을 행하는 동안, *주님*은 늘 우리 곁에 거하십니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하십니다.

                                                        *J.H 새미스(목사님, 찬송가 작사가)*

*삼상 3:10*~>*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헌신해야 할 마땅한 영역에서 헌신하지 못하고 세상일과 나의 확신 같은 것에 헌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일에 모든 관심을 쏟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청각장애인이 됩니다. 내가 요즘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내 심령이 듣고 순종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진보복음주의 순회설교가)*

*삼상 3:19*~>단지 눈을 감는다는 이유만으로, 무릎을 꿇고 드린다는 이유만으로 말이 *기도*라는 천상의 언어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없이 말을 할 수 있으며, 말을 하지 않고도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평범한 말이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언어를 넘어서며, 언어 이면에 있는 *성령*의 언어, *성령*의 탄식이, 바로 *기도**입니다.

                                            *레오나드 레이븐힐(*기도로 부흥하라*의 저자)*

*삼상 4:3*~>정치적, 군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블레셋보다 미비했으므로 그들에게 저항할 효과적인 방책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전쟁터에서 그들(=이스라엘)과 동행하시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인간적으로 생각하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가져왔으나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그들의 관계가 *인격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상자 속에 집어넣고 인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6:7*

                                        *존 드레인(스코틀랜드 스털링대학 신학과 교수님)*

*삼상 5:1,2*~>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그들의 중심도시인 아스돗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이신 *하나님*을 포로로 사로잡은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사람의 의도대로 이리저리 다루어질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도구로 취급당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결코 조롱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유진 피터슨(, 리전트칼리지 영성신학교수님)*

*삼상 6:9*~>다곤의 멸망, 그리고 쥐와 독종의 재앙은 *하나님*께서 죄 많은 인생들 앞에서 그분(=*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변호하셨으며, 앞으로도 변호하시리라는 영원한 표시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승리 가운데서 완성될 때, *하나님*의 심판 또한 나타날 것입니다.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보수악인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이 진리를 이해하고 *그리스도*안에 있는 승리를 항상 바라보아야*합니다.

                                                                                   *고든 케디(강해설교가)*

*삼상 6:20*~>벧세메스 사람들은, 인간적인 생각과 호기심으로 법궤를 들여다보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실패를 경험한 후에, 또다시 인간적인 생각으로 -법궤를 여기에 두면 안 되겠다, 다른 곳으로 보내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그분(=*하나님*)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설 수 없는 존재지만, *주 예수님*의 보혈로 인해 담대히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있습니다.

                                                                  *윤 희주(대구 성덕교회 은퇴목사님)*

*삼상 7:4~6*~>진정한 회개는, 단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신의 죄가 *여호와*께 대한 것이며, 그분(=*하나님*)을 무시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보수의 죄가 온전히 제거되기를 바라기 전까지는, 정직하게 죄를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존 맥아더(강해설교가)*

*삼상 7:12*~>*에벤에셀(*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이라는 지형이름은, 앞서 *삼상 4:1*에도 나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어떤 기도나 간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전략적인 지형을 이용해, 자신들이 블레셋을 쉽게 물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를 증언하는 증인이 된 것입니다.

                                                                     *왕 대일(감신대 구약학 교수님)*

*삼상 8:9*~>백성의 요구대로 왕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보수의 악을 *진보* **으로 바꾸실 수 있는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마치 강물이 때로는 거꾸로 흐르는 듯 보이지만, 종국에는 드넓은 대양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꾸불꾸불 딴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 같으나 결국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듯,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움직여 가고 계십니다.                  *이 승장(*예수*마을교회 담임목사님)*

*삼상 9:2*~>*하나님*, 백성들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그런 자격만을 소유했던 한 사람에게 관심을 둘 것을 사무엘에게 요구하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어떤 남자보다 더 준수했으며, 그 백성의 누구보다 더 키가 컸던 선택된 자였습니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육신적으로 준수했던 이 왕은 훗날 제멋대로=보수적으로 행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었으며, 과대망상에 빠졌으며 비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찰스 스윈돌(달라스 신학대학원장님)*

*삼상 9:16*~>백성의 선호나 사무엘의 경향과 상관없이, 사울의 선택은 *하나님*의 전적인 의도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사울의 선택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블레셋의 박해로 인한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백성을 블레셋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의 구원이, 지도자 선택의 목적*이었습니다.

                                                                       *김 지찬(총신신대원 구약학교수님)*

*삼상 10:9*~>사울은 *하나님* *(=성령)*이 주신 능력으로, 선지자들의 예언하는 일에 동참했으며, (NEW)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성령*께서 경험과 학식 없는 사울에게, 왕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울 이전의 사사들이 축복을 받아 그랬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유진 H. 메릴(성경주석가)*

*삼상 10:16*~>사울의 침묵은, 그의 순종과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믿음으로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급한 마음으로 말을 앞세워 *하나님*보다 앞서 가다가 일을 엉망으로 만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침묵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침묵은, *하나님*의 스케줄을 따라가는 지혜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성 주진(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님)*

*삼상 10:22*~>사울은, 자신이 왕으로 뽑히자, 곧 그 자리를 떠나 숨어 버렸

습니다. 얼마나 꼭꼭 숨었던지 *하나님*께서 그를 찾는 자들에게 그가 숨은

장소를 일러 주셔야만 했습니다. 출중한 외모에 겸손한 중심, 왕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그들

의 초대 왕을 만세부르며 환영했습니다.

                                                         *이 재철( *주님*의 교회 담임목사님)*

*삼상 11:14,15*~>히브리어로 *새롭게 한다*는 것은, *교정하다,/보완하다,/

원래 상태로 돌린다*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불완전한 왕권을

완벽하게 만들자는 말이 아닙니다. , 인간왕권은 자체적으로 새롭게 되거나

완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피조세계가 구속되어야 하듯이, 인간왕권

(통치력) *하나님*안에서 갱신되어야 합니다. 사무엘과 백성들은, 길갈에서

인간 통치력을 언약적으로 갱신한 것입니다.

                                            *성 기문(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님)*

*삼상 12:20*~>당신을 만들고 구원하신 분을 당신의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

,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순종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배드리고 섬기면서, *하나님*

충성을 바치는 태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충성을 바

치는 태도에서, 거룩한 삶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제임스 패커(리전트 신학교 조직신학교수님)*

*삼상 13:9,10*~>사무엘과 달리, 사울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의미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심오한 통찰력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사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이야기들은, 신앙을 따라 행동해야 하고 형세가 절망적일 때 신뢰해야 하며,

그 결과까지도 감수해야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소명을 지닌 인간의 삶의 상

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버나드 W. 앤더슨(프린스턴 신학대학원 구약신학 교수님)*

*삼상 13:13*~>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장 많이 안다고 판단해서 *하나님*없이

살기로 선택합니다. 그들은 어차피 되어질 일이라면, 스스로 해보겠다고 결정

합니다. 그들이 신봉하는 모토는 이렇습니다. -그냥 거기 앉아 있지 말고, 

엇인가를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 우리를 따라다니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다고 하는 자

, 오만하고 불손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헨리&탐 블랙커비(*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의 저자)*

*삼상 14:6*~>*하나님*을 신뢰하며 기꺼이 자리를 내어 드리기 전에는, *하나

*께서 당신을 위해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의 순종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만날 때,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

수 있게 됩니다. *하늘아버지*의 개입을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앤드 스탠리(노스 포인트교회 담임목사님)*

*삼상 14:16*~>요나단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위대한

전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블레셋 진에서는, 왜 갑자기 공포가 생기

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우상을 숭배하고 미신이 가득했던 블레셋이었기에 한

사람이 20명을 죽였다는 소문은, 그들을 떨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것

입니다. 그들은 공포로 말미암아 극도의 혼란 가운데 빠져들게 되었고, 결국

자멸을 초래했습니다.                                    *피터 브로우톤(성경주석가)*

*삼상 14:43,44*~>다음의 전투에 임하려 할 때, 사울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

지 못했습니다. 이 일로 아들 요나단이 불순종한 것을 알게 된 그는, 자기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 가책을 느끼는 것은, 참으

로 쉬운 일입니다. 사울의 행위는, 그의 마음이 어둡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

니다. 그의 교만이 그를 낮추었던 것입니다.   *워렌 W. 위어스비(강해설교가)*

*삼상 15:11*~>사울의 즉위와 폐위에 관한 스토리는, 개인의 비극적 운명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과연 이스라엘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왕

으로 모시면서도, 인간 왕의 제도를 수용할 수 있느냐의 실험에서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열방과 같은 왕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

도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께 순종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김지찬(총신신대원구약학교수님)*

*삼상 15:22*~>사울은 *하나님*께 드린 후한 제물과 *하나님*의 집에서 보낸

시간들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의 불완전한 순종을 눈감아 주실 것이라고 생

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지혜와 물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보다, *겸손히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완전하게 순종하는 것은, 절망만 가져다 줄 뿐입니다. 사울이 결국 자신의 왕

, 나아가서는 자신의 생명까지 그 대가로 치러야 했듯이 말입니다.

                       *브루스 윌킨슨(WTB 선교회 설립자, *야베스의 기도*의 저자)*

*삼상 15:34,35*~>사무엘과 사울은, 각각 다른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 사울과의 관계를 끊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말씀*의 레이저광선에 자기

의 마음과 양심을 내비치기 싫어했습니다. 그는, 보수=악의 강을 건너갔습니

. =사울에게는 더 이상 경고도, 호소도, 간청도, 질책도 없습니다. 이제는,

그의 영적상태의 불가피한 파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두려운 일만 남았습니

.                                                           *고든 케디(강해설교가)*

*삼상 16:7*~>용모와 신장은, 믿음 없는 이스라엘의 주된 가치기준이었습니

. 그런데 제사장 사무엘의 판단기준도, 이와 비슷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사

무엘이 제사장 역할을 잘 꾸려 나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시보다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한다면 구속사의 중대한 사명을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

나님*과 인간의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계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김 영호(*하나님*, 왜 이야기를 주셨을까? 의 저자)*

*삼상 16:14*~>*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서 떠나시면, 그 무엇으로도 그의

영혼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사람에게 평안을

주시면, 온 세상의 그 무엇도 그 심령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찰스 브래들리(신학자)*

*삼상 17:4*~>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힘으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커 보이는

장애물과 맞서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작고 일상적인 문제들에 감정이라는

스테로이드를 투여함으로써, 그것을 거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리는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렸으며, 모든 것에서 그분(=*그리스도*)

영화롭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거인에게 승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면, 그분(=*그리스도*)은 우리를 승리로 부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노만 라이트(상담치료자)*

*삼상 17:37*~>그동안 목동생활을 해 온 다윗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사나운 짐승들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한 사자와 곰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실제로 경험했

, 담대히 골리앗과 싸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장애와 질병의

리앗, 가난의 골리앗, 실패의 골리앗 등을 물리치기 위해, *하나님*의 힘을

지하며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십시오.

                                                *조 용기(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님)*

*삼상 17:45*~>눈에 뵈는 게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다윗이 혼자서, 블레셋의 거인장수와 맞서 싸울

생각을 한 것은 결코 객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불

타는 사랑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기에, *하나님*께서

적에게 모욕당하시는 것을 참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윗은, *하나님*을 자기 목숨보다 뜨겁게 더 사랑했던 것입니다.

                                                    *원 용일(직장사역연구소 연구원)*

*삼상 18:1*~>요나단과 다윗은 상대방을 향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까지,

신뢰를 키워가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한 요나단은 다윗과 한편이 되어 주었고, 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했습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멘토링의 핵심은, *신뢰, 보호, 확신, 사랑, 존중, 지지, 격려*입니다.

                      *팀 엘모어(목사님, 당신의 자녀안에 리더십을 키우라. 의 저자)*

*삼상 18:14*~>다윗과 사울은, 같은 시기에 활약했던 인물로 서로 닮은 점이

많습니다. 둘 다 바닥에서 일어나 정상에 올랐고, 탁월한 용기와 지도력으로

그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비참한 실패자로 끝났고, 다윗은 성공

한 자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결정적인 순간

에 사울은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했고, 다윗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영적인

해결책을 찾았다는 데 있습니다.                *김 진홍(두레교회담임목사님)*

*삼상 18:23*~>사울이 다윗에게 자신의 딸과 결혼할 것을 2번이나 제안했으

, 다윗은 자신이 왕의 사위가 될 어떤 자격요건도 갖고 있지 않다고 부정했

습니다. 여기서 보듯,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은 다윗 자신의 계획이 아니었습니

. 다윗이 왕의 사위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배후에서 사울을 도구로 사

용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유진 피터슨(, 리전트칼리지 영성신학교수님)*

*삼상 19:4*~>흔히 우리는 개인적 야심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가리곤 합

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이 자기에게 불리한 것이었음에도 불구

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과감히

포기하고, 오히려 사랑하는 친구 다윗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

과 힘을 할애했습니다. 결국 요나단이 다윗의 미래를 보장해 줌으로써, 이스

라엘전체가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존 맥스웰(목사님, 리더십전문가)*

*삼상 20:3*~>하늘나라와 우리 사이의 가까움은, 막으로 형용할 수 있습니다.

이 막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막 가운데 가장 얇은 것입니다. 잠깐 생

각을 하는 사이에, 혹은 맥박이 한번 뛰는 사이에 우리는 **의 세계로 들어

가 큰 비밀을 알 수도 있고, 인간의 말로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광채를 바라

볼 수도 있습니다. 당신과 사망 사이가 한 걸음뿐이듯이, 당신과 하늘나라 사

이에도 하나의 막이 있을 뿐입니다.           *찰스 스탠포드(찬송가작곡가)*

*삼상 20:23*~>요나단과 다윗에게도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정을 소중히 한다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었습니

. 그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으로 서로를 대해야 하는 것을 알았습니

. 요나단은 다윗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왔습니다.                               *스튜어트 브리스코(엘름브룩 교회 은퇴목사님)*

*삼상 20:33*~>사울은 아버지로서 요나단을 극진히 사랑했고, 자기 뒤를 이어

왕이 되게 하려는 집념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때문에 아들에 대한

자신의 꿈이 산산조각 날 위기를 느꼈을 때, 사울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

입니다. 더구나 아들 요나단이 자신의 무서운 정적인 다윗을 아끼고 사랑하여 보

호하려 했을 때, 사울은 일종의 배신감마저 가졌을 것입니다. 당신이 사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옥 한흠(서울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님)*

*삼상 20:42*~>다윗은, 유능한 장군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

습니다. 왕의 사위이기도 했던, 그에게는 큰 자질과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러나 모든 것은 이제 다 끝났습니다. 다윗은, 망명자일 뿐이었습니다. 다윗에

게는,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에 대해 불안한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부터 다윗이 이스라엘왕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며 훈련시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피터 브로우톤(성경주석가)*

*삼상 21:6*~>이 구절은, 우리성도들이 급할 때면 성경의 규정을 얼마든지 어

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고 보면, 그런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시장하여

진설병을 먹었다는 것은 자비와 관련됩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제사가 충돌

할 경우, 자비가 제사보다 우선한다는 원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권 성수(대구동신교회 담임목사님)*

*삼상 21:12,13*~>일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제 적의 수중으로 도

망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두려워하면 함정에 빠집니다. 다윗은,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왕은 유대의 영웅을 자기지경에 두고 관용을 베풀려

하지는 않았으므로, 다윗은 도망하기 전에 미친 짓을 해야 했습니다. 이 일은,

다윗의 생애의 종말이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왕의

마음을 바꾸어 다윗을 쫓아내도록 하셨습니다.

                                                                             *워렌 W. 위어스비(강해설교가)*

*삼상 22:20*~>승리의 삶을 위한, 상세한 방법론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러나 *하나님나라*의 승리는, *진보진리*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보진리가 당장에는 손해와 패배를 초래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진보진리

의 사람들 곧 *남은 자들*을 통하여 패배를 승리로 바꾸십니다.

                                             *성 주진(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교수님)*

*삼상 23:14*~>고통이 낳는 것은, 참으로 묘하지 않습니까? 동굴들 속에서 자

기노래의 슬픔에 빠진 다윗은 단연 가장 위대한 찬송작가가 되었으며, 

세상이 알게 될 모든 깨어진 마음들을 위한 가장 큰 위로자가 된 것입니다.

                                                         *진 에드워드(세 왕 이야기의 저자)*

*삼상 23:23*~>일단 사울마음에 질투의 씨앗이 뿌려지자, 두려움과 분노와 비

통한 마음이 끓어오르며 그의 질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습니다. 우리도

한 번쯤은 사울처럼 되어 봤을 것입니다. 한번 불 붙여진 분노는, 우리 스스로

통제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부정=보수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 우리

가 취할 가장 최선의 길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구하는*

입니다.                                              *베스 모어(시인과 전사의 저자)*

*삼상 24:5,6*~>힘센 전사인 다윗도, 사울이 단창을 던지자 왕궁 근처에는 오

지도 않고 왕궁에서 떠나 광야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울의 권위를

공경하는 태도는 잃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피해 사울이 진정으로 회개하거나,

*하나님*께서 의롭게 심판하시기를 기다리는 가운데서도, 다윗은 변함없이 사

울의 권위에 복종했습니다.                           *존 비비어(기독교 저술가)*

*삼상 24:17*~>세상에서 제일 피곤한 일이 원수 갚는 일입니다. 원수를 갚으

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눈이 살기등등해집니다. 공격=보수적으로 바뀝니

. 그래서 복수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수는 내(=*하나님

*)가 하겠다.*고 하십니다. 혹시 여러분 곁에 미운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

맡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사랑하십시오. 진노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의 갈 길은 이것입니다.              *하 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님)*

*삼상 25:13*~>사울을 죽이지 않고 돌려보냄으로써 일생의 최고 영적승리를

이룬 다윗이, 나발의 반응에는 쉽게 이성을 잃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처럼 우

리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보수사탄은 우리에게

비수를 꽃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승리 후에는, 적절한 후속책이 있

어야 합니다.                            *송 병현(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님)*

*삼상 25:28*~>아비가일이 자신을 다윗의 여종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녀

는 다윗이 지금은 쫓기는 신세이지만 장차 *여호와*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

으로 세우실 것을 알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다윗이 경건한 사람이라는

문을 익히 알고 있던 그녀는, 그가 완전히 굴복하여 처분만 기다리는 사람을

용납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더그 슈마트(쿡 커뮤니케이션스 편집국장님)*

*삼상 25:34*~>*하나님*께서는 아비가일을 급히 보내시며, 그녀를 통해 다윗

을 살인이라는 죄책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아비가일이 없었더라면, 다윗은

나발과 더 나아가서 자신까지도 죽게 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설득

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그녀의 간청을 수용했습니다. 다윗은, 복수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아비가일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녀가, 다윗의 생

명과 미래를 구원했던 것입니다.

                                          *월터 브루거만(콜롬비아신학교 구약학교수님)*

*삼상 26:9*~>*하나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보복을 허용하지 않으셨으며,

원수 갚음은 *하나님*의 권한임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다윗은 원수를 사랑함

으로써 원수를 패배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진리에 온전히 순종했

니다. 이러한 다윗의 태도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담아 *하나님나라*

의 윤리를 실천하는 신앙공동체의 초석이 됩니다.

                                                                *이 승장(*예수*마을교회 담임목사님)*

*삼상 26:23*~>다윗은 성격이 다른 2대적과 싸워야 했는데, 이 두 싸움의 원

리는 상이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외적과의 싸움이 칼로 하는 것이었다면, 이스

라엘 내부의 적, 그것도 자신보다 먼저 기름부음을 받은 왕과의 싸움은 칼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왕이 칼로 나올 때, 다윗은 칼을 휘두르지 않고

도망만 다녀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행하심(기름부음)에만, 소망을 걸

며 인내해야 하는 싸움이었습니다.                  *송 제근(토라학교 대표)*

*삼상 27:1*~>다윗의 삶과 역할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서는, 다윗이 이스라엘을 떠남으로 완전히 손해를 입은 것같이 보이는 상황을

장차 유익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다윗은, 블레셋 지역으로 들어가 어쩔 수

없이 사기와 기만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의 불완전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마침내 자신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피터 브로우톤(성경주석가)*

*삼상 28:6*~>*하나님*, 함부로 대답하시거나 아무 생각없이 대답하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내게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행한 보수의 죄를 직시하고 *하나님*앞에 자복하기를 기

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네 삶의 다른 문제로 넘어가지 않겠노라.*. *우리를 보수죄악에서 구

 달라는 기도*, 우리를 적에게서 구해 달라는 기도보다 선행되어야 합니

다.                                 *베스 모어(시인과 전사의 저자)*

*삼상 29:6,7*~>다윗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오히려 적의

도움으로 당당하게 그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왕으로 세

우려고 작정하신 다윗을 보호하셨습니다. 심지어 적국인 블레셋 안에서도 다

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 미래의 왕을 보호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까지도 사용하셨습니다. 결국 블레셋은 사울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다윗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채 규현(광주중앙교회담임목사님)*

*삼상 30:6*~>국적없는 사람처럼 되어 버린 다윗은, 자신의 정체성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했고, 목숨에 대한 위협을 느꼈으며

비참해졌습니다. 그러나 보수의 어두운 날들은,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진보

*) 생각을 하게하고,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일이 이루어

진다면, 영적각성이 파멸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찰스 스윈돌(달라스 신학대학원장님)*

*삼상 30:10*~>아말렉과의 전투를 앞두고, 한 사람의 병사라도 아쉬운 때에

600명 가운데 체력이 바닥나서 따라오지 못하는 200명을 쉬게 한 다윗의 결

단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a.승리를 약속하신 *주님*께 대한 확고

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러한 결정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b.믿음이 좋았다고

해도, 다윗이 인도주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

니다.                                     *옥 한흠(서울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님)*

*삼상 30:23,24*~>다윗은 성공의 시점에서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힘의 기반

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탈취물을 나누어 주었

습니다. 다윗의 관대한 행동은, *하나님*의 행동으로 재가받고 권위를 부여받

습니다.                           *월터 브루그만(콜롬비아신학교 구약학교수님)*

*삼상 31:4*~>*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치욕

적으로 죽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살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행위

,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사울이 금기를

어기고 스스로 자살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보수적으로 행하

던 인생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유진 H. 마릴(강해설교가)*

 

* 1:10*~>*하나님*, 그분(=*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해 그를 에워싸십니다. 사람은, 그러한 보호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을 *하나님*께 둘려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이라며, *3:23*에서 탄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보수사탄은, *하나님*의 둘러쌈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와 그 집과 그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닙니까?*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보호*를 의지하십시오.

                                                                                          *L.B 코먼 선교사님*

* 1:22*~>역경을 당하는 동안, *하나님*이 아니고는 우리의 심령을 진정으로 위로해 줄 수 없습니다. 욥은 지독한 시험을 당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대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의 갑작스런 불행은, 더욱 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리하던 그(=)의 영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안식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찬양드리는*것은, 고난을 이겨낼 힘을 줍니다.

                                                                     *제시 펜 루이스(영성연구가)*

* 2:9*~>욥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자녀와 재산 모두를 잃고, 결국 건강도 잃었습니다. 같은 곤경은, 욥의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도 10명이나 되는 자녀를 한꺼번에 잃었고, 종들과 재산과 가진 전부를 잃었습니다. 욥의 고난은 그(=) *하나님*의 은혜로 이끌었지만, 욥의 아내는 절망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말을 남기고, 불신과 의심의 바다에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질 브리스코(엘름브록 교회 사모님)*

* 3:1*~>말없이 들어줄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 앞에서는, 감정표시를 하기가 쉽습니다. 욥은 탄식을 함으로써 큰 위로를 받았는데, 친구들이 그(=)의 말을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친구들이 그(=)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의혹을 억누르기보다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은 끝까지 원망하지 않습니다.         *캠벨 몰간(설교가, 성경학자)*

* 4:5*~>어떤 고난으로 인해, 마음이 심한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손 안*에서, 고난이 그 손가락 사이로 걸러진다는 사실에 안심하십시오. *하나님*, 사악한 보수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궁극적인 목적과 영광을 얻으실 것이며, 욥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마지막에는 선한 결과를 보게 될*것입니다.

                                                      *케이 아더(프리셉트 국제 본부 창설자)*

* 5:8*~>*챨스 쿠퍼*, *고통을 이겨내는 데 친구들의 카드와 편지와 전화와 포옹과 사랑이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쓰러지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그분(=*하나님*)의 선하심 또한 완전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이자, 설계자, 위로자, 구원자이신 *하나님*, 우리를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라비 재커라이어스(기독교 변증가)*

* 5:17*~>우리는 *하나님*께 굽히기를 싫어해서는 안 되며, 그분(=*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를 비천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에게 권징하시며 시험하시는 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존대하게 만드시는*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매튜 헨리(영국 성경주석가, 신학자)*

* 6:10*~>우리도 자녀의 죽음, 비극적인 사고 등, 고통스런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실제 싸움터인 것처럼 느끼며, *하나님*께 외적인 상황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의 싸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가?*하는 것입니다. 욥은 *믿음이 가장 비합리적으로 보일 때, *믿음*이 가장 필요*하다는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필립 얀시(크리스채니티 TODAY 편집자)*

* 6:14*~>우리는, 고통당하는 자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고통은 거룩하고 신비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자에게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울어주면서, 오히려 침묵을 지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고통을 통해 그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도록 도와주는*것이 중요합니다.               *옥 한흠(서울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님)*

* 7:4*~>온 몸이 쑤시는데다가 속까지 메스꺼워, 이불 속에서 한참을 뒹굴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 있는 중국의 *가정교회*동역자들을 떠올리니, 저는 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통을 몸소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법입니다.

                                                    *케이 아더(프리셉트 국제 본부 창설자)*

* 8:7*~>빌닷은 욥에게 *하나님*을 향해 자비를 구하면, 욥이 처음에 복 받은 상태로 회복될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그 회복이 처음에는 보잘것없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빌닷은 지금 *하나님* 경외의 보답을, 부유한 재산의 축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받으면, 다시 부자가 된다는 빌닷의 견해는 그릇된 견해입니다.

                                          *민 영진(구약학자, 대한 성서공회 부총무)목사님*

* 8:11~13*~>이 구절에서, 불경한 자는 불안전하다고 묘사합니다. 곤경을 맛보지 않으면 기쁨을 누릴 수 없고 물이 없이는 식물이 자랄 수 없듯이, *인간* *하나님* 없이는 성공 만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식물이나 즐거움이 빨리 시드는 것은, 발전이나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인간이 고난을 당하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캠벨 몰간(설교가, 성경학자)*

* 9:17*~>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까닭 없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희미하게 보나, **천국*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것입니다. 거기(=*천국*)서는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고, 불가사이가 명료해지며, 어두운 본문이 밝아지고, 힘겨운 섭리가 지혜로운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청교도 설교가)*

* 9:32*~>*하나님*이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실 때, 우리는 그것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한한 영역에 있지만, 그분(=*하나님*) *영원*이라는 무한한 영역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하나님*)의 길은 분명 옳은 것이긴 해도, 우리가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길의 끝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다만 *나는, 그냥 그것을 받아들인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찰스 스윈돌(달라스 신학대학원장님)*

* 10:1*~>죽음과 같이 깊은 고통과 상실 속에서, 욥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드러내고 슬퍼했습니다. 행복한 척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으스대는 미사여구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고통을 호소한다고 해서,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낸시 거스리(미국 기독출판계 편집자)*

* 10:17*~>*하나님*, 대적이 나를 향해 쏘는 화살을 보고 계십니다. 그분(=*하나님*), 그보다 더 강력한 방패로 우리 앞을 막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 가운데서 이 어려운 일이 우리가 삶에서 인내를 배우기 위해*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방패를 잠시 내리시고 욥에게 그러하셨듯이, 적이 쏘는 화살이 우리를 맞히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캐롤 메이홀(네비게이토 선교회 사역자)*

* 12:9*~>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제련의 명장이신 *하나님*이 불꽃과 열을 알맞게 조절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오르는 불길에 주목하거나 불꽃을 더 뜨겁게 하기 위해 더하는 연료를 주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 불은, *하나님* *제어하시는 불*입니다. 그것은 아무런 목적이 없거나 우리를 소멸시키는 불이 아니라, *우리를 정화시키시는 불*입니다.                                            *케이 아더(프리셉트 국제 본부 창설자)*

* 12:13*~>당신의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결정된 뜻의 일부를 알 수 있습니까? 당신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영적 지위 뿐입니다. 당신이 지금 *그리스도*안에 있다면, 미래의 어떤 순간에도 *그리스도*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당신에게 숨겨져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략과 지혜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랜트 하워드(Knowing Gods Will-and Doing It 저자)*

* 13:4*~>옳은 말이라고 해서, 다 선한 말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진리*라고 해서, 누구한테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말하는 동기가 잘못되면, 천상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가지고 말해도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적용이 잘못되면, 비록 *진리*라 할지라도 선한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이것이 욥의 친구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옥 한흠(서울 사랑의교회 원로목사님)*

* 13:22*~>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영적좌절이 *, *주님*이 무엇을 뜻하셨

던가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라는 식의 밝은 웃음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때로 우리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제목을 달아서 좌절을 느끼

는 내용들을 적어 놓고 그곳에 두어야 합니다.

                                                        *제임스 돕슨(Focus on the Family 창설자)*

* 14:1~3*~>그분(=*하나님*)의 계획은 승진과 좌천, 건강과 질병을 포함하

, 번영과 역경, 행복과 불행, 희극과 비극, 기쁨과 재난 모두를 의미할 수 있

습니다. 그분(=*하나님*)의 주권은, 깨어진 꿈과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작

용합니다. 우리가 끝을 볼 수 없을 때, 그분(=*하나님*)은 거기서 고개를 끄덕

이시면서, *그래, 그것이 바로 나(=*하나님*)의 계획이란다.*라고 말씀하십니

.                                                     *챨스 스윈돌(달라스 신학대학원장님)*

* 14:18,19*~>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은, 절망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

며 우울증에 빠져 헤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지

마십시오. 욥과 같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도, 영적으로 침체에 빠졌습니다. 

대신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밧줄에 꼭 매달아

놓고 계시다는*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옥 한흠(서울 사랑의교회 원로목사님)*

* 15:17*~>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었으며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

,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이것은 욥에게 *하나님*

을 잘못 설명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 욥을 잘못 설명하는 것입니다. 

들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며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질 브리스코(엘름브록 교회 사모님)*

* 16:19~21*~>*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중 하나가 *임마누엘*입니다. 그것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

, 가까이 계시다는 느낌이 없습니까? 그렇더라도 그런 느낌과는 상관없이, *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드와이트 L 칼슨(UCLA 임상의학과 교수님)*

* 17:11*~>그분(=*하나님*)은 질병을 치유해 주실 수도 있고, 쓰러져 가는

사람도 세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그분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르

 철저한 자아포기는, 상황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보일 때라도 *하나님*이 그분(=*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제임스 돕슨(Focus on the Family창설자)*

* 18:5*~>보수악인은 잠시 동안 안으로는 빛을 얻고 즐거움과 기쁨과 소

망을 어느 정도 누릴 것이며, 밖으로도 재물과 영예의 능력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빛은 일순간의 섬광일 뿐 바로 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서 사그라지고, 쉽게 꺼지는 등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

* 아니라, 악인의 불빛이며 악인이 피운 횃불이기 때문입니다.

                                                    *매튜 헨리(영국 성경주석가, 신학자)*

* 19:14*~>고통과 시련이 무의미하지 않은 것처럼, 고독도 무의미하지 않습

니다. 인간이 깊은 고독 속에 서 있을 때, 조용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 자연(서울 왕성교회 원로목사님)*

* 19:25*~>가장 심한 고뇌와 괴로움을 당하는 순간에는 영혼이 산산조각 나

서 전에는 결코 가능하지 않던 빛의 영역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지식으로

자유로이 빠져나갑니다. 욥도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의 시련 속에서도, 입술을

깨물고 그(=)에게 닥쳐 온 고난의 짐들을 *그리스도*께 맡겨 버렸습니다. 

(=)의 영혼은 그(=)가 그(=) *구세주*와 마주보게 될 영광스러운 날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제시 펜 루이스(영성연구가)*

* 20:17,18*~>죄인은, 번영의 상징인 *식수* *엉긴 젖* **이 흐르는

강을 즐기지 못할 것입니다. 엉긴 젖은, 응고된 우유 또는 요구르트의 일종으

로 중동지방의 진미였습니다. 죄인은 죽게 되면, 반드시 노고로 얻은 사업과

산업의 이익을 제대로 누려 보지도 못하고, 다시 주어야만 했습니다.

                                                                                 *로이 B. 주크(성경주석가)*

* 21:7*~>이생에서 항상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불경건한

자가 번영하고, 경건한 자가 망하기도 합니다. *오직 앞으로 닥친, *주님*

엄격한 심판*만이 이 두드러진 보수=악의 승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요인입니

. 사후의 심판은 비록 욥 당시보다는 그 이후의 시대에 더 명확히 나타나지

, 신구약 모두에서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글라슨 아치(진보복음주의 신학자)*

* 21:26*~>죽는 일은 일회성으로 끝나며, 한 번 죽은 후에는 두 번 다시 죽

을 일이 없습니다. 만일 그대가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무덤에서는 회개할 길

이 없습니다. 만일 그대가 죽을 때 하던 일을 미완성으로 남긴다면, 무덤에서

는 그 일을 완성할 길이 없습니다.* 9:10*. *토마스 왓슨(청교도 저술가)*

* 22:2*~>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우리로부터 어떤 좋

은 것을 받아야만 되는 것처럼 상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정반대입니다. 그분

(=*하나님*), 더해지거나 덜해질 수 없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총력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손에서 아무것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존 칼빈(신학자, 종교개혁가)*

* 22:26*~>*하나님*, 사각 원을 만드실 수 없습니다. 두 각으로 된 트라

이앵글을 만드실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모두가 *하나님*

전능하심*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언*한다는 것입니다. *전능*

라는 말은 *하나님*이 어떤 일이든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 *모든 창조물과 창조질서는 항상 *하나님*의 통제와 권위 아래 있다.*

말입니다.                                 *R.C 스프로올(리품드 신학대학원 교수님)*

* 23:10*~>*연단*은 문자적으로 *시험을 당하고 인정을 받는 경험*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환란이 다가올 때 우리는 미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 인

할 것이고, 자신의 믿음이 진정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러한 경험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의 금은 불 속에 들어갔지만 녹아 없어

지지 않고, 오히려 *깨끗하게 정제*되어*나왔습니다.

                                               *존 파이퍼(베들레헴 침례교회 담임목사님)*

* 24:24*~>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구만을 생각하는 보

=이기적이고 욕심많은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

나님*의 눈은, 그들의 길에 서 있습니다. 보수의 악인들은 높아져도, 잠시간에

없어지고 낮아져서 제함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들을 하실 때를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날들을

알고 이해해야만 합니다.                   *제시 펜 루이스(영성연구가)*

* 25:5,6*~>*하나님*의 기쁨은, 그것을 노력의 결과로 얻어낼 수 있다고 믿

는 자들이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자격자임을 인정하는 자들이 받는*

입니다.                                      *맥스 루케이도(오크힐스교회 담임목사님)*

* 26:7~11*~>땅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는 그 모든 것

 *하나님*의 권능 안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통제된 물과 빛과 어둠의 신비

, 그분(=*하나님*)의 통치 영역 안에 있습니다. 풍랑이 일었다가 가라앉는

것 역시,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의 결과입니다. *켐벨 몰간(성경학자)*

* 27:7*~>*진보*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보수의 왕인 사탄의 도전을 받아

들이시자, 욥의 인생에는 안개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원망을 쏟아

붓고 자신의 생명을 저주하고 죽기를 원했지만, 여전히 *하나님*께 대한 *믿

*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믿음*을 지킬 아무런 이유가 없을 때, *믿

*을 지켰습니다. (=), 자욱한 안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기셨습니다.*

                                                     *필립 얀시(Christianity Today 편집인)*

* 27:18*~>부자에게 급작스럽게 닥칠 불행을 부자는 그 전날 저녁때까지도

모르고 있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깨어난 후에야 자신이 알거지가 된 것을 안

다는 이야기입니다. 악한 부자에게 닥치는 이런 재난은, 이처럼 예고도 없이,

홍수처럼 폭풍처럼 피할 새도 없이 들이닥치게 됩니다.

                                          *민 영진(구약학자, 대한 성서공회 부총무, 목사님)*

* 28:12*~>*지혜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읽으면,

*호크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을 찾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말은, *,

지혜의 아가씨 어디에 가야 그 여인을 만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번역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 남성이 자기가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 한 여성을 찾

기 위해, 온갖 고난을 마다 않고 애타게 찾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민 영진(구약학자, 대한 성서공회 부총무, 목사님)*

* 30:18,19*~>*하나님*께서 순경을 원하는 우리에게 역경을 허락하시고, 평안히 살고 싶은 우리에게 위기를 허락하시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진정한 변화*가 있기를 갈망하시기 때문입니다. , *우리 신앙의 성장과 인격의 성숙*을 원하시는*것입니다.

                                                                *길 자연(서울 왕성교회 원로목사님)*

* 30:26*~>*하나님*, 자신에 관해 아무것도 계시하지 않으신 채 암흑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맹목적인 믿음으로 암흑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길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그분(=*하나님*)의 빛, 그분(=*하나님*)의 인격의 밝은 빛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십니다.         *R.C 스프로올(리품드 신학대학원 교수님)*

* 31:7*~>욥은, 공정한 처사와 의의 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도록 매우 주의했습니다. *우리도, 모든 세미한 행위와 일에서까지 욥처럼 의로움의 규율에 자신을 견고하게 묶어 두어야*합니다. 또한 욥의 마음은, 눈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안목의 정욕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늘에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합니다.

                                                                    *매튜 헨리(성경주석가, 신학자)*

* 31:13~15*~>욥은 우리의 창조주가 한 분이시며,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소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낮고 천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모두 자신과 형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소명을 가진 사람들로 여기며, 그들을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25:40*.             *존 칼빈(신학자, 종교개혁가)*

* 31:23*~>욥은, 엘리바스의 거짓주장에 대한 대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자와 빈궁한 자를 압제하지 않았다고 반박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했기에, 유달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동정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재물과 신분이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로이 주크(성경주석가)*

* 32:2,3*~>엘리후가 욥을 보는 관점은, 다른 세(3)친구와 크게 대조됩니다. 그는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불의한(?)분으로 여기는 죄를 짓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옥 한흠(서울 사랑의교회 원로목사님)*

* 33:9~11*~>엘리후는 욥이 했던 말을 인용하고 있지만, 자신의 주관이 섞

여 그 표현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욥은 엘리후가 인용한 말과 달리 인간의 근

본적인 죄성을 인정했고, *하나님*의 공의를 믿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자

신이 그렇게도 무서운 징계를 받아야 할 이유를 몰랐고, 친구들이 인과응보의

논리로만 자신의 고난을 해석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불만을 표현했던 것입

니다.                               *이 상근(대구 제일교회 원로목사님, 성경 주석가)*

* 33:17*~>*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최종 산물은,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굴복한 그리스도인, 겸손한 영혼*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 *하나님*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린 영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

닙니다. *주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후 토마스 버튼(미국 글래스그로우 교회장로님,*상한심령*저자)*

* 33:29,30*~>수영이 미숙한 사람을 파도가 덮쳐서 해변으로 자꾸 내동댕이

치듯, 나도 역경의 파도를 만날 때마다 고통스럽게 해변으로 통겨졌습니다. 

지만 바로 그 때문에 나는, 내가 참으로 가고자 갈망했던 길을 여행할 수 있었

던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우리가 늘 그렇게 생각해 왔듯이 성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 *성장*하는 데 있습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러시아 문학가)*

* 34:13~19*~>엘리후는,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한 지식에 기초하고 있다

고 주장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있어서, 특별한 심리를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욥은 *하나님*앞에서

자기의 처지를 호소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엘리후는 그럴 필요가 없다

고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완전히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

. **하나님*의 모든 판단은, *하나님*의 이해력에서 나온*것입니다.

                                                                           *캠벨 몰간(설교가, 성경학자)*

* 34:31,32*~>나는 끔찍한 고통을 이겨내고 그 고통을 헤쳐나간 뒤에 훨씬

강한 모습으로 변한 사람을 많이 봐 왔습니다. *고통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

는 기회이며, 우리를 정화하고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브루더호프 공동체 지도자)*

* 35:6*~>무한한 의의 관점과 조건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과 무관하십

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에 따르면, *

나님*은 인간과 무관하실 수가 없습니다.   *캠벨 몰간(설교가, 성경학자)*

* 36:11*~>우리의 가장 험한 싸움은, *우리의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사용하시고자 하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풍성히 알고자 하

, 우리 영혼이 다른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도 즐거워하지 않고 불 같은 뜨거

운 열정으로 온전히 *하나님*만 사랑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것

도 끼어들지 않도록, *자신을 열심히 포기하는*것입니다.

                                              *래리 크랩(상담가, 성경적 상담 연구소 설립자)*

* 36:13*~>*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분이며, 모든 자비의 근원이

십니다. *하나님*, 우리의 눈물을 거두시고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

 *우리는,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

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분(=*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으며 알아야*합니

.                                                 *질 브리스코(엘름브록 교회 사모님)*

* 36:24*~>*하나님*, 시원찮은 일은 하나도 행하지 않으십니다. 이 점은,

우리 주변에서 세부적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에 대해, 왜 우리

가 잠자코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됩니다. 삼라만상을 비롯한 *하나님*

의 가시적인 업적들은, 우리가 감탄하고 칭찬할 만합니다. 그것들 가운데서 우

리는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과 인자하심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매튜 헨리(성경주석가)*

* 37:2*~>인간이 *하나님*의 위엄하신 권위에 복종할 수 있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권위부터 *만나야*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 권위를 만났는지*의 여부로 규정됩니다. *그런 권위를 만났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붙들려 있기에, 앞으로 어디서든 다른 권위를 만나도 그분(=*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수 있습니다.*                                 *존 비비어(크리스천 저술가)*

* 38:11*~>*하나님*은 바다에 경계를 정하시고, *여기까지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까지만 너는 오고, 그 이상은 안 된다.*라는 말입니다. 그분(=*하나님*), 천사들에게도 한계를 정하십니다. 하늘들을 능히 뼘으로 재시며, 지구를 저울에 다시는 *하나님*, 분명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40:12*. *(=*여호와*),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아멘.* 23:24**

                                                                           *토마스 왓슨(청교도 저술가)*

* 38:33*~>나는, 과학연구를 통해 우주가 정교하다는 사실을 점점 강하게 믿게 되었고, 어찌나 놀랍고 신비한지 그것을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나는, 더 높은 차원의 설명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폴 데이비스(물리학자)*

* 39:1*~>*하나님*께서 던지신 질문들은,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꾸짖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계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오크힐스 교회 담임목사님)*

* 39:25*~>제대로 훈련된 말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습니다. 총알과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싸움터에서도 그 말은 꽁무니를 빼지 않습니다. 총을 들고 대포를 쏴도 주인의 뜻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누구든, 한마음으로 복종할 뿐입니다. 절대로 자기를 지키거나, 몸을 가리려 하지 않습니다.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함*입니다. *존 비비어(크리스천 저술가)*

* 40:4,5*~>욥이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에게는, 이제 *그대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주님*이 가자고 하시는 대로, 그대로 따르겠습니다.*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 *하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산드라 퀘린(틴 첼린지, *예수*전도단사역자)*

* 41:11*~>욥은, 대꾸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드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않으셨고, 아무에게도 설명하거나 변명할 것이 없으십니다. *하나님*, 그 누구에게도 갚아야 할 것이 없으십니다. 이는, 그분(=*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맥스 루케이도(오크힐스 교회 담임목사님)*

 

* 1:4*~>솔로몬은 자연의 순환에서 관찰되는 상황이, 인간의 모든 수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논증합니다. 새롭게 발생되거나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전의 사건이나 성취된 일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새롭게 보일 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창조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성취한 중에서 완전하게 새로운 것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도날드 글렌(성경주석가)*

* 2:11*~>솔로몬은 지혜와 부, 지위, 권세, 명성 등, 사람들이 갖고싶어 하는 모든 것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대한 그의 평가는, 바로 헛되고 무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절망했던 그가 인생의 선한 일을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이 인생의 시간과 목적을 정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브루스 윌킨슨(WTB선교회 설립자)*

* 2:16*~>전도서 기자는 전통적으로 선(=*진보*)의 개념인 **이 악=보수의 개념인 어둠보다 나은 것과 같이,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상대적인 개념에서 이해되고 인정될 뿐입니다. 이러한 상대적 우월성은, 영원성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지혜도, 죽음을 떠나게 하거나 그 시기를 연장할 수 없습니다.

                                                           *노 세영(서울신학대학교 구약학교수님)*

* 3:11*~>*하나님*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외면한 채, 캄캄한 역마차 속에서 모든 커튼을 굳게 내려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역마차 바깥 자리에 타고 주변의 온갖 아름다운 것을 지켜봅니다. 이들은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고 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들판과 산과 하늘을 바라보며 기쁨을 만끽합니다. 당신은, 어느 부류의 사람입니까?

                                                           *J.R. 밀러(미국 장로교목사님, 신학자)*

* 3:17*~>*하나님*, 모든 일에 즉시 결과를 나타내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에 대한 심판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또한 외견상으로는, *진보의인*과 보수악인의 상황이 정반대적인 현상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보수악인이 멸망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하신 말씀에 책임을 지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김 선도(광림교회 원로목사님)*

* 4:16*~>대중의 갈채는, 변덕스럽고 찰나적입니다. 사실 새 왕이 등극하기가 무섭게 반대자들이 생기며, 그들은 또 다른 왕을 내세울 준비를 합니다. 인기의 정상에 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들의 수효는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그러므로 인기를 받음으로써 만족을 채우려는 일은, 바람을 잡듯 헛된 망상일 뿐입니다.                                    *스튜워트 올리오트(성경주석가)*

* 5:2*~>가장 완전하고 효과적인 의사 전달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하나님*), 우리에게 어떻게 훌륭한 대화자가 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말을 적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속히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사람들의 필요와 요구, 그들의 영적인 호소가 무엇인가를 듣는 일에 민감해야 합니다. 또한 말하기를 더디하고 혀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김 연택(미국 칼빈신학대학원교수님)*

* 6:10*~>사람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창조주의 목적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창조주의 창조섭리에 순응해야 되는 자입니다. 아니면 욥처럼 *하나님*께 도전하지만, 결국엔 *하나님*께 굴복하게 되는 존재입니다. 우주의 신비를 깨달을 때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전지전능에 비해 인간의 약함과 무능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강 사문(장신대학교 구약학교수님)*

* 7:1*~>이스라엘사람에게, 기름은 재산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재물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경은 보배로운 기름보다 *아름다운 이름이 낫다*고 말씀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다.*는 의미는, *a.*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았다는 의미와 함께, b.아름다운 인격으로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성품으로 살아가면, 우리이름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전 병욱(서울 삼일교회담임목사님)*

* 7:16*~>절대적인 지혜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피안에 있듯이, 절대적인 **역시 그러합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교만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지나치게 의인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말이나 지나치게 악인이 되려고 하지도 말라는 말을, 보수의 악이나 보수불의에 대한 허용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보수=악의 허용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고백일 뿐입니다.       *민 영진(목사님, 대한성서(=성경)공회부총무)*

* 8:8*~>가장 완고한 죄인일지라도,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마음을 강하게 먹을 수 없습니다. 가장 교활한 보수악인이라고 해도 죽음을 속이지는 못하며, 가장 뻔뻔스러운 보수악인일지라도 죽음을 무시하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오히려 인간들이 스스로 몰두하는 보수의 악은, 그들을 사망에서 구출해 주기는커녕 그들을 사망에게 내어줄 뿐입니다.                      *매튜 헨리(성경주석가)*

* 8:11*~>자유주의 사회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은 보수범죄를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해결책은 그들의 재활을 돕는 데 있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개혁과 재활은 해답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성령*에 의한 새로운 출생(=거듭남)만이, 보수죄인을 진보성도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문가들 가운데 그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윌리엄 맥도날드(성경주석가)*

* 9:10*~>전도서기자는, 우리의 손이 해야 할 *하나님*의 창조의 일을 힘을 다해 하라고 권고합니다. 밤이 오면 그때는,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음부=스올에는, 할 일도 없고 계획조차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할 수 있을 때, 힘을 다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은 섬김의 세상이요, 장차 올 세상은 보상의 세상인 것입니다.                                           *윤 춘병(, 원주제일감리교회 담임목사님)*

* 10:7*~>때때로, 진정 위대한 사람들이 낮은 신분에 처해 수척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때가 되면, 의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실 분(=*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수수깨끼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계실 때, 종들의 종이 되셔서 섬기셔야 하는 힘들고 좁은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이여, 인내하십시오. 영원한 세상에 이르면, 유한한 세상의 잘못된 보수의 요소들이 올바르게 될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진보복음주의 설교가, 신학자)*

* 10:13*~>우매자는 머리가 아둔하기보다는 생각이 그릇된=보수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그의 생각과 말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13*절 말씀은, 그의 말의 어리석은 시작에서부터 비극적인 최후에 이르는 과정을 다룸으로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광패(wicked madness)라는 무시무시한 말은, *하나님*의 뜻과 진보진리를 거부한 데서 비롯된 마지막 열매들입니다.

                                                       *데렉 키드너(틴데일house 학장님)*

* 11:3,4*~>우리는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몸 밖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서 큰일을 한다 해도,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헛고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일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큰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성을 이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십니다.                          *김 서택(대구동부교회담임목사님)*

* 12:1*~>*하나님*께서는 꽃봉오리가 맺히는 시절의 그리스도인을 소중히 여기시고, 청년시절의 꽃을 기뻐하십니다. 긍휼하심에 대해, 절망해야 할 그런 노년은 없습니다. 또한 긍휼하심을 소홀히 해도 될, 그런 청년도 없습니다. 청년시절의 죄는, 노년의 슬픔을 쌓는 기초가 됩니다. *D.L 무디(복음전도자)*

(참고~전도서기자가 곳곳에서 쓰고 있는 *헛되다*라는 표현은, 피조된 세계가 *하나님*을 떠난 비참한 상황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 1:8*~>마음에 정한 고상한 목표는, 외적행위에 대한 가장 강력한 파수꾼이 됩니다. 목표가 없는 삶은, 아무런 방비가 없는 삶입니다. 키와 나침반과 목적지가 없는 배는, 사나운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올바른 뜻을 정하는* 능력있는 방비책을 가졌습니다. 불리한 형편이 그를 에워쌀 때마다, 그는 단호하게 길을 열어 나갔습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영광스런 목적에 부합되게 삽시다.                                        *찰스 카우만(미국선교사님)*

* 1:19*~>다니엘은, 적어도 66년동안 이방 왕들을 곁에서 모셨습니다. 그 와중에 그는 생명의 위협을 받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신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도, 신앙의 지조를 지킨 좋은 본보기가 바로 *다니엘*입니다. 그는, 보수적인 권모술수가 판치는 보수=세속적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백성*으로서의 본분을 저버리지 않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필립 얀시(Christanty Today편집장)*

* 2:2,3*~>사람에게는 생각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우리는 번민하게 됩니다. 당신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서 번민합니까? 당신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부인하거나, 경멸하거나, 무절제하게 사용하진 않습니까? 당신은 보수의 불순한 것과 뒤섞여, 살고 있진 않습니까?            *찰스 스펄전(진보복음주의 설교가)*

* 2:18*~>*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녀와 교제하시며, 기도하는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매일매일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말씀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과 교훈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주님*의 일을 위해 기도하는 자녀들을 찾고 계십니다.      *주 경로(헤리슨버그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님)*

* 2:27,28*~>세상의 권력들은 변하지만, *하나님* *하나님자신*의 백성을 영원히 세우실 것입니다. 이것은 바벨론으로 잡혀간 한 젊은 유대인 다니엘의 생애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다니엘의 꿈에 대한 해석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하여금 지혜와 권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하게 합니다.

                                                          *브루스 윌킨슨(WTB 선교회 설립자)*

* 2:44*~>고대의 임금 느부갓네살이 그랬던 것처럼, 현대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무시합니다. *하나님나라*, 보이는 (육적인)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 모두를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책임지십니다. *그날 이후*를 두려워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6:33*.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한 처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케이 아더(프리셉트 국제본부 창설자)*

* 3:1*~>신앙에 감동이 필요하긴 하지만, 감동만으로는 사람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맞았어.  *하나님*이 진짜로구나. 그걸 신통하게 알아맞히다니.* 이런 고백을 한 후, 곧바로 금 신상을 만드는 느부갓네살왕을 보십시오. *나에게 던져진 말씀이, 참으로 내 삶을 *하나님*앞에서 바꿀 때까지, *주님*앞에 온전히 순종할 때까지*감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받은 말씀에 대한 순종*여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동원(지구촌침례교회 원로목사님)*

* 3:17,18*~>*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자신들을 구해 주시리라는 것을 그 청년들은 믿었습니다. 또한 자기들이 비록 풀무불 가운데 던져진다 해도,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시련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만을 의뢰했습니다. 기도응답이 지연될 때 화를 내고 굳어지며,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를 돌보시는지 의심하기 시작합니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과 이를 통한 축복을 배우십시오.                                       *밀드레드 스탬(*여호와*는 나의 목자 저자)*

* 3:28*~>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의 명령이 신앙의 본질을 위협하는 용납할 수 없는 것임을 간파했습니다. 그들(=다니엘과 세 친구), *하나님*과 바벨론을 겸하여 섬길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우상숭배는, 유다가 바벨론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결코 우상숭배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과 그의 신상에 절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바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필립 얀시(Christanty Today편집장)*

* 4:4*~>왕궁에서의 호화스럽고 편안한 생활은, 오히려 느부갓네살의 신앙을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추진하여 그것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을 때, 또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잡았을 때, 느부갓네살처럼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거부하게 될 위험이 많습니다. 보수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성취한 성공과 업적에 매료되도록 부추기며 세상의 환락과 안일과 풍요로움에 빠져 *하나님*의 은혜를 잊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R.S 윌레이스(성경신학자)*

* 4:17*~>이 땅의 역사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의 손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떠나면, 그것은 곧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느부갓네살에게 이 우주와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길 원하셨습니다.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바로 믿고 따르는 길은, *겸손함*에 있음*을 느부갓네살은 깨달아야 했습니다.

                                                                        *김 경섭(프리셉트 성경연구원장님)*

* 4:27*~>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보수죄악을 속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것은 공포된 어떤 심판이라도, *회개*가 있으면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줍니다. 또한 다니엘은, 그에게 진보공의를 행하고 소외된 백성을 긍휼히 여길 것을 종용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낮아진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행동*을 요구한 것입니다.                    *드와이트 펜티코우스트(성경주석가)*

* 5:8*~>세상의 타락한 지혜는, 결코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결코 어떤 심오한 철학이나 세상의 타락한 어떤 학문을 통해서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려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자를 들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십니다. 지혜의 근본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습니다.* 1:7*

                                              *이 태훈(총회개혁신학연구원 구약학교수님)*

* 5:13*~>역사가 시작된 이래, 모든 나라와 가족이 겪는 불행의 가장 주된 원인은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항상 대립을 가져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대립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늘, 사람과 사물을 내려다봅니다. 그러한 사람은, 결코 위에 계신 *하나님*을 뵐 수 없습니다. 교만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C.S 루이스(기독교 변증가)*

* 5:20*~>우리는, 우리가 아주 높이 평가하는 것을 만드신 *주님*보다 우리 자신으로 가득 차 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는 스스로를 평가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대저 우리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는 이 위대하신 분의 농장에 있는 소작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펜(영국 퀘이커교도)*

* 6:4*~>다니엘이 그의 삶에 있어서나, 그의 행동원칙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으로 여겼던 것은 *하나님*의 미소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늘에 계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을 하겠다고 작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밖에 없는 견고한 기초이자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완벽한 원칙입니다.                       *싱클레어 퍼거슨(스코틀랜드 트론교회 협동목사님)*

* 6:10*~>다니엘은 한 달 동안의 위기만 사뿐히 건너뛰면, 어떤 영광이 자기에게 돌아올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잘 알았습니다. 이렇게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한 다니엘이, 다리오왕에게 포기당하지 않았던 것은 참으로 의미있습니다.                                       *원 용일(직장사역연구소 연구원)*

* 6:22*~>만약 다니엘이 받은 질문을, 여러분이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그때 우리는, 힘차고 즐거운 목소리로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실직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병상에 눕기도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그날 승리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 8:37*~>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멘.*                                                                                   *정 근두(울산교회 담임목사님)*

* 7:9*~>*흰 머리*, *그리스도* *영원*을 뜻합니다. *그리스도* *끝없는 날들*을 말합니다. 또한,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안정* *지혜*를 표현합니다. 그분(=*그리스도*)은 시간 밖에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이 늙어서, 갖게 되는 흰머리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분(=*그리스도*), 우리에게 흰 머리를 약속하십니다. 그날에 우리는, 영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질 브리스코(Just Between Us 발행인)* 

* 7:25~27*~>믿음의 사람은, 고난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능력입니다. 신앙은 고난 앞에 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복 받기만 원하고 고난과 십자가를 거부하면, 우리의 신앙은 약해집니다. 고난 앞에서 낙심하고 쓰러지는 것은 온전하지 못한 보수적인 신앙입니다. *진정한 진보적인 믿음은, 고난과 역경 앞에서 더욱 건강해지는*것입니다.

                                                                 *반 태효(얼바인 온누리교회 목사님)*

* 8:11*~>자만보다, *하나님*께서 더 싫어하시는 것은 없습니다. 본질에 있어서 첫 번째가 되고 근본이 되는 이 죄는,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리고자 합니다. 또한 자만은, 가장 의식하고 있지 않을 때 범하는 보수의 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주님*의 삶으로 우리자신을 측정해 본다면, 그 천박함과 비루함과 타락함에 질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J. 오스왈드 샌더스(OMF이사, 설교사역자)*

* 8:26*~>여기서 *간수하라*는 의미는, 주어진 이상을 비밀히 숨기고 있으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그 내용을 잘 보존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명령은, 앞으로 있을 고난의 때에 성도들을 강하게 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양 창삼(목사님, 한양대 디지털경영학부 교수님)*

* 9:3*~>다니엘의 기도는, 진보복음진리의 말씀과 자신이 보는 세상 사이의 긴장에서 일어났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처한 현실과 *하나님* *말씀*사이에서 긴장이 조성되었을 때,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성경말씀*과 자신의 경험이 상충될 때에도, 그 긴장에서 달아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충돌을, 기도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으로 삼으십시오.

                                                                              *존 화이트(내적혁명의 저자)*

* 9:15*~>다니엘은, 범죄하거나 *하나님*을 배신하고 반역했던 적이 없음에도 자신을 나머지 *하나님*의 백성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보수의 죄를, 자신의 보수의 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정의로운 성품이, (=다니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다니엘) *하나님*의 백성들의 어려운 시간에 일어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백성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헨리 불랙커비(, 캐나다 벤쿠버 선교회 총재)*

* 10:8*~>때때로, 우리들은 *주 예수님*께 대해 불경스런 말을 하는 자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심판의 날이 오면, *주님*께 몇 마디 드릴 말이 있다고 우쭐댑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가리워지지 않은 *주 예수님*의 영광을 보면, 인간은 전신에서 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분(=*주님*)의 발 아래 쓰러지고 맙니다. 누가 *하나님*의 아들(=*주 예수님*)이 지닌 위엄을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유한한 인간에게는, *주 예수님*의 광명한 모습이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스튜워트 올리오트(성경주석가)*

* 10:12*~>문제가 오면, 그 뒤에는 언제나 교훈이 따라옵니다. 다니엘의 경우를 볼 때, *하나님*은 그(=다니엘)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정하고 겸손하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다니엘), 우리처럼 *주님*을 향한 열정에 불을 지피는 효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겸손한 기도를 반드시 받으시며 응답하십니다.

                                         *찰스 스탠리(애틀란타 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님)*

* 11:2*~>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니엘 선지자에게 미래의 사건을 알게 하신 의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격변을 조절하시며,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한결같이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다니엘을 비롯한 이스라엘백성들이 앞으로 닥칠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며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존 칼빈(신학자, 종교개혁가)*

* 11:14*~>이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은, *이상을 이루려* 일어났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주님*께서 다니엘에게 구체적으로 예언하신 대로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일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다니엘이 받은 환상의 진실성 또한 확증되어 갔습니다. 이 사실은, *주님*의 백성들이 시련의 시기를 지날 때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의 궁극적인 승리를 다니엘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튜워트 올리오트(성경주석가)*

* 11:24*~>여호수아 시대 이래, 정치적, 군사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졌던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은, 이제 이방인의 지배 아래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조차, 전능하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흥하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동일하게 통치하십니다.                                                    *브루스 윌킨슨(WTB 선교회 설립자)*

* 11:32~35*~>여기서 지혜는 *영적지혜*로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진보적) 믿음*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극심한 박해 때에도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자가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자, 참된(=진보적)믿음을 가진 성도는, 박해를 당하면 그 진가가 더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박해나 시련에도 *작정된 기한*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도록 용기를 줍니다.

                                            *양 창삼(목사님, 한양대 디지털경영학부 교수님)*

* 12:2*~>*영생은,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본문의 영생은, 영원한 만족*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영원한 만족의 상태로 들어가는 사람과 영원한 부끄러움의 상태로 들어가는 사람으로 확연히 나누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회개와 진보믿음의 자리*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 동원(지구촌침례교회 원로목사님)*

* 12:13*~>종말을 맞는 성도는, 안심하고 그동안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종말에 대한 염려로, 더 이상 여생을 시달리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종말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으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안심하며 평안을 누리라*고 하셨습니다.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충성되게 *주님*의 종으로 달려갈 길을 마치면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딤후 4:7,8*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승장(*예수*마을교회 담임목사님)*

 

* 1:3*~>*하나님*, 스스로를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으로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의 낯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고대인들은, 대부분 지방신(gods)의 개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어떤 한 지역만을 다스리는 신(gods)이거나 어떤 한 곳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날마다 변함없이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알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송 계성(서머나교회 담임목사님)*

* 1:16*~>멋지고 은혜로 가득한 일이, 요나의 보수적인 불순종과 *진보*적인 *순종*의 삶에 들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그(=요나)를 사용하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불순종하는 자로서 도피할 때, 선원들은 *하나님*께 기도드렸으며 믿음의 삶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요나가 성을 내면서라도 순종했을 때, 니느웨 사람들은 구원받았습니다.*3:10*

                                                          *유진 피터슨(, 리전트칼리지 교수님)*

* 2:1*~>지금도 요나처럼,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지 않고는 기도를 배울 수 없는 현대의 요나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는 큰 풍랑을 당하지 않고는, 기도를 배우지 못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이제라도 기도를 배운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모든 상황이 보수의 절망적인 때에라도, *하나님*이 내 곁에 계셔서 내 음성을 듣고 계시다는 사실은 축복이 아닙니까?                        *이 동원(지구촌침례교회 원로목사님)*

* 4:1*~>모든 성경이 그렇듯이,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인간 요나는 듣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인간의 뜻이나 간구나 필요에 따라서 자동으로 움직이시는 기계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임 세일(한무리교회 담임목사님)*

 

* 1:5*~>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자주 들어왔지만 오랫동안 무시해 왔고, 마치 자신의 방종을 변명하기 위해 시간을 지연하는 것처럼 기만의 늪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어떠한 경고 앞에서도 보수적으로 완악하게 행동했고, *주님*께서 언제까지나 참아 주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화정도로 생각했던 심판이 임박했음을 명백히 선포하십니다.                           *존 칼빈(종교개혁가)*

* 2:3*~>*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정한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이런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확실하고 곧 이루어질 일이지만, 사람이 느끼기에는 더딘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사람의 시간감각의 차이는, 기도의 응답이나 재림의 소망에서도 나타납니다.

                                                                     *방 선기(목사님, 직장사역연구소장님)*

* 2:14*~>*하나님*은 하박국 시대에 이러한 보수의 죄들을 심히 미워하시며 증오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을 채울 것이라는 약속은 여전히 굳게 서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돌아오셔서 보수의 모든 죄들을 소멸하시고 *하나님*의 의로운 왕국을 건설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워렌 W. 위어스비(강해설교가)*

* 3:2*~>진노와 심판은, 언약을 파기하는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당시의 악한 민족에게는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진노와 심판을 발하심이, *하나님*의 완전한 본질은 아닙니다. *하나님*,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들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이제 징벌의 와중에 쌓여 있는 하박국은, *하나님*의 특성 가운데 긍휼한 면을 나타내시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W. 베이커(오하이오 아쉴란트 신학대학원 교수님)*

* 3:16*~>*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 자신의 마음과 시각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은 자신의 환경이나 여건이 이렇게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할 수 있으며, *여호와*께 찬양드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기쁨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이것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임 세일(한무리교회 담임목사님)*

 

* 1:23*~>그분(=*예수님*), 위대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아주 이상한 일을 하셨습니다. 보좌에서 내려와 빛나는 옷을 벗으시고,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착색된 인간의 살갗을, 우주의 빛 되신 분께서, 어둡고 축축한 태내로 들어가셨습니다. 천사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분께서, 한 시골처녀의 태반에 친히 자리를 잡으셨다가 싸늘한 밤에 탄생하셔서 말구유에서 주무셨습니다.

                                                *맥스 루케이도(오크힐스교회 담임목사님)*

* 2:11*~>박사들은, 마리아의 무릎 위에 있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에게, 왕에게 합당한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확신시켜 줄 기적을 보지 못했지만, 자기들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거룩한 *구세주*를 보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신앙의 본보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황금~왕이신 *예수님*께, 유향~선지자이신 *예수님*께, 몰약~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드리는 예물)              

                                                                                                    *존 라일(성경주석가)*

 

* 1:1*~>복음이, 어떠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깨달으십시오. 복음을 파도속에 던진다면, 그 복음은 더 순전하게 일어납니다. 복음을 불 속에 던지면, 그것은 더욱 더 찬란한 밝은 빛을 가지고 나옵니다. 복음을 따로 따로 끊는다면, 그 끊어진 각 부분은 교회가 됩니다. 복음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복음은, 어떤 처지에서도 살아납니다. *복음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찰스 스펄전(청교도설교가)*

* 1:17,18*~>제자가 스승을 찾아나서는 랍비의 경우와는 달리, *예수님*은 주도권을 가지시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는, *예수님*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예수님*),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급박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직면하여, *예수님*은 이들을 부르셔서 보수의 죄와 보수죽음을 상징하는 바다로부터 사람들을 이끌어 내는 과제를 주셨던 것입니다.

                                            * D. 그래스믹(성경주석가, 달라스 신학교교수님)*

* 1:25,26*~>*예수님*은 그분을 대적하는 보수귀신을 제압하심으로써, 그분(=*예수님*)의 권세를 나타내셨습니다. 복음서들은, 악한 보수의 영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 모든 상황에서 주권자가 되십니다. 인간의 삶에서, 존엄성과 풍성함을 빼앗아 가는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이 개입하시면 해결됩니다.

                                                *랄프 마틴(풀러신학대학원 학장님, 신약학자)*

* 2:11,12*~>중풍병자는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었기에, 들것에 실려 가장 무력한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수치스러워하거나, 치유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들것에 누운채 무능하고 유약한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면, 그 들것을 내 손에 들고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죽어서 *주님*께 나아가면, 살아서 나온다*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이 중수(강해설교가)*

* 2:14,15*~>레위는 *예수님*께서 그의 삶을 요구하셨을 때, 적극적으로 그리고 즉각 반응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세리의 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며, 동료들과 다른 죄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함으로써, 그들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영적재산을 얻기 위해 물리적 재산을 버린 레위는, *예수님*과 교제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랜트 오스본(트리니티 신학대학원 신약학교수님)*

* 3:5*~>*예수님*, 보수주의자 바리새인의 완악함을 보시고 진노하셨습니다. 보수적으로 부패한 시대의 징조 가운데 하나는, 그릇된=보수적인 일을 보고도 분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분노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처럼 뜨거운 의분을 가질 때, 우리는 세상의 보수적인 오류를 바로잡으러 나갈 수 있습니다. 의로운 분노는, 위대한 일을 이루게 합니다.                                                 *W. 헛셀 포드(청교도 설교가)*

* 3:14*~>먼저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의 인격과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시는 모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뒤따르는 길이란, 그와 토론하고 논쟁하는 사변적 자리가 아니라 *삶의 전 인격성을 동반하는 더불어 경험하는 자리*인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이러한 삶의 교제는, 그들로 하여금 세상으로 파송하는 자격을 위임받게 합니다.                                                   *김 지철(서울 소망교회 담임목사님)*

* 3:33*~>형제라는 명칭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전 세계에 걸친 *하나님*의 가족일원이 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또한 이 명칭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가 한 형제라면, 우리를 이런 이름으로 부르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집에서 맏아들이 되시는 분이, 다름 아닌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존 스토트(신학자)*

* 4:8*~>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사실은, 이 비유의 분위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지만은 않다는 점입니다. 씨 뿌리는 농부의 모습은, 어두운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밝은 모습입니다. 씨의 생명의 길이는 점점 나아졌고, 마침내 옥토에서 점진적인 리듬을 깨고 비약합니다. 그래서 결국, 놀라운 열매를 맺습니다.                                 *최 갑종(천안대학교 기독신대원 신약학교수님)*

* 4:31,32*~>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나라*가 거목으로 표현되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서 큰 숲을 이루는 겨자씨 한 알로 설명하셨습니다. 씨앗은 작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말은 미래가 있다는 말이며,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일꾼 된 우리는, 생명의 힘을 지니고 진보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김 진홍(두레교회 담임목사님)*

* 4:41*~>풍랑을 만나 흔들리는 배 안에 *하나님*의 아들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사건(Big Event)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께 친근감만 가져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존경만 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은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가 되시니, *주님*의 발 앞에 예배드리는 자리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이 동연(목사님, 한국 찬송가위원회 위원)* 

* 5:18~20*~>보수귀신 들렸던 자가 치유받고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청했을 때, *주님*은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가족과 친구들과 친척과 이웃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난 다음에도, 계속 불신자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복음 전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세상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다면,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김 연택(일심교회 담임목사님)*

* 5:31*~>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만졌으며,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만지기 위해 서로 밀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손을 댔지만,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만짐을 *예수님*은 즉각적으로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이 여인의 만짐은, 바로 믿음의 만짐이었습니다.

                                                         *이 동원(지구촌침례교회 원로목사님)*

* 5:39~41*~>*예수님*, 야이로의 딸이 죽은 줄 알고 통곡하는 사람들을 모두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 후에 올바른 믿음으로 충만한 제자들과 *예수님*께 올바른 신앙고백을 드린 부모를 데리고, 시신이 안치된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 부정=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같이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긍정=진보적이고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소녀야 일어나라*하시는 창조적인 명령을 통해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조 용기(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목사님)*

* 6:11*~>먼지를 떨어버린다는 의미는, 본래 이 유대도시들을 부정한 이방도시들처럼 취급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성도라면, 그러한 도시의 먼지 한 톨이라도 그들에게 남아 있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크레이그 키너(이스턴 침례신학대학 신약학교수님)*

* 6:42~44*~>이것은, 복음을 상징하는 실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이 외관상으로 볼 때는 나약하고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모든인류의 굶주린 영혼들을 먹이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 십자가의 사건이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일처럼 보이지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존 라일(청교도설교가)*

* 6:51*~>아무런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맹렬하게 출렁이던 물결이 즉시 잔잔해졌습니다. 파도는 *예수님*의 신하였으며, 바람은 *예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그 이후 계속 증언하게 될 사건들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오크힐스교회 담임목사님)*

* 7:7*~>그들의 공격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식사전에 의례적으로 손을 씻는 장로들의 유전을 어겼다는 고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고르반의 예를 들면서,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실질적으로 무효화시켰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행위 및 인위적 규범들의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의 경배는 보수적=헛될 뿐이었습니다. *루이스 바비에리(성경주석가)*

* 7:23*~>인간의 불순종으로 보수의 죄가 들어온 후, 모든 인간들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후 성화의 과정에서도, 육적인 마음과의 싸움은 계속됩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대적은, 세상도 아니고 보수마귀도 아닙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가장 큰 대적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김 남준(열린교회 담임목사님)*

* 7:26*~>*주님*, 자기 안에서 모든 인종적인 장벽들이 무너져 내렸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만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영혼이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왔을 때, *주님*은 그 영혼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을 예견케 해 주는 것입니다.                *캠벨 몰간(성경학자)*

* 7:33,34*~>*주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장애인을 치유하실 때, 얼마나 사랑이 넘치고 친절하셨는지! 그가 청각장애인이었기에, *주님*께서는 정상적으로 말씀을 전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대신에, 두려워하는 그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셔서 4가지의 상징적인 행동을 취하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눈과 귀가 열렸고, 마침내 그는 나음을 받았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코넬리스 반더발(성경주석가)*

* 8:11*~>영적으로 무지한 바리새인들은, 4000명을 먹이신 사건을 통해서 확신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책잡을 것이 없을까 하여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겸손함과 열린 마음으로 그 의미를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탄식하시며 이들에게는 표적이 주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삶 편집부*

* 8:23~25*~>우리는, *하나님나라*에 관한 것들을 보지 못하는 영적맹인의 상태로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를 덮고 있는 본질적인 보수의 어둠 때문에 사람이, 걸어다니는 나무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우리 눈을 열어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보게 하는 은혜행위는 중생=영적 거듭남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행위입니다.

                                                         *R.C. 스프롤(리품드신학대학원 교수님)* 

* 8:35*~>삶에서 일어나는 상실을 *예수님*을 위해 받는다면, 오히려 점차 자기중심의 보수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로운 삶에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진정 문제는 이것입니다. *나는, 삶의 상실들을 나를 위해 당하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위해 당하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생사를 가르는 선택입니다.                   *헨리 나우웬(영성연구가, 심리학자)*

* 9:9*~>변화산에서, 본 것을 말하는 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은 환상을 보고 증언하지만, 그들의 생활과는 일치되지 않습니다. 인자(*예수님*)가 아직, 그들 속에서 부활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생명과 교제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은 우리마음 속에서 깨달아질 수가 없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진보복음주의 순회설교가)*

* 9:24*~>믿음은, 우리의 삶 가운데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그 어떤 도전 앞에서도 결코 뒷걸음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견고한 진보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최상의 모본이십니다.

                                            *윌리엄 보세이(Winners group대표, 저술가)* 

* 9:37*~>본문의 표현에는 어린아이의 많은 특성이 포함되겠지만, 어린이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요인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수님* *말씀* *행동*을 통해, *하나님*이 연약한 자(장애인)와 짓밟히고 버림받은 자, 어린아이들 곁에 얼마나 가까이 계신 분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고 계신 것입니다.

                *달라스 윌라드(신학자, 남켈리포니아대학교 철학과 교수님)*

* 9:50*~>이 말씀은, 제자공동체 안의 건전한 내적상태와 관련된 언급입니다. 그것은 *평안*이라는 특징을 가지며,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시고 계시는데, 제자들이 자기들 가운데 누가 위대한지에 대해 경합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더욱 적절한 언급이 될 것입니다.

                                   *도널드 잉글리쉬(감리교 실행협의회 의장님, 설교가)*

* 10:21*~>우리는, 도덕적으로 옳고 확고하며 솔직하고 지적이며 온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경건하고 좋은 아버지이며, 훌륭한 주인이고 충성스런 종이면서도, 한 가지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우수함이 우리에게 *천국*을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조지 치터(강해설교가)*

* 10:28*~>*제자 도*의 핵심은, *포기(부인)하는*것입니다. 돈은,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포기해야 할 여러가지 목록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돈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학연과 지연과 배경을 포기할 수 있으며, 하나뿐인 자기 목숨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단순히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으로 제자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한 *동기*까지도 면밀히 점검되어야 합니다.         *이 광우(전주 열린문 교회 담임목사님)*

* 10:38*~>우리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며,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정도만 생각하며 기도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고자 원하시는 일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알지 못하는지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제 제가 무엇을 바라고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여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은, 무엇을 바라고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목사님, 성경신학자)*

* 10:47,48*~>이 세상에서도, 성공은 결심을 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만 옵니다. 우리의 마음에 구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보기를 간절히 구하여서 보게 된 것과 같이, *구원얻기를 각오하는 만큼 은혜가 그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주님*을 만날 때까지 당신이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끝내는 *주님*을 찾게*될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청교도 설교가)*

* 11:7,8*~>이 나귀새끼는 한 번도 매어 본 적이 없고, 이전에 한 번도 사람을 태운 적도 없었습니다. 무리들의 떠들썩한 환호성, 종려나무와 화려한 의복,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열광적인 흥분 속에서, 전혀 통제할 수 없을 듯한 이 나귀새끼가 즉각 길들여져,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 가사는, 세상의 모든 짐승을 부릴 수 있는 *그리스도*의 권세, 어떠한 거친 짐승도 순종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권세를 보여 줍니다.

                             *찰스 로빈슨(미국의 장로교목사님, 찬송가 378장 작사가)*

* 11:17*~>*하나님*의 집인 *성전* *하나님* *기도, 예배드리는 집*에서, 장사 행위로 인하여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는 *예수님*의 탄식입니다.  *말씀*이 상실되고 *기도*가 끊어진 *성전*안에 다만 거짓된 제의적 행위를 통해 자기의 배만을 채우려는 무리들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보수강도의 모습이 교회 안에 있다면 *예수님*은 분노하시며 심판하실 것입니다.                                                 *김 지철(서울 소망교회 담임목사님)*

* 12:1,2*~>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을 갖고 어떤 경험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그런 것은 꽃일 뿐이고, *열매가 뒤따라야*한다는 것을 잊고 있는 소치입니다. 가지가 접붙여지고 수액을 유입받는 것이 좋은 일이듯, *말씀을 듣고 훈련을 받으며, 스스로 기쁨을 누리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포도원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포도원의 소출을,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로버트 머리 맥체인(스코틀랜드 목사님)*

* 12:17*~>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있을 동안 사실 정부의 보호를 받고, 도움을 입는 이상 세금의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 국가에 대한 의무를 넘어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의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건전한 시민정신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예배와 봉사와 사랑을 통해*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옥 한흠(서울 사랑의교회 원로목사님, 국제 제자 훈련원 원장)*

* 12:26,27*~>*예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그들의 *하나님*이었다(과거형).*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그들의 *하나님*이라(현재형)*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육체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지만,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분명한 인격체로서 묘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부활하고, *예수님*의 소유로 인정될 것입니다.

                                                                        *H.A 아이언사이드(설교자)*

* 12:33*~>사랑이 없다면, 외적인 일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사랑으로 행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결실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동 자체보다 *행동의 동기가 되는, 사랑*을 달아 보십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독일의 성직자, 사상가)*

* 12:43,44*~>*예수님*께서는 그녀가 가난한 과부라는 것을 아셨고, *큰 믿음*이 있어 *생활비 전부*를 드릴 수 있었으며, 외부의 아무런 설득 없이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동기뿐 아니라, 우리의 수단도 아시며, 보수의 위선은 인정하시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최선이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리 작게 보일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우리의 최선을 *주님*께 드리기*를 기대하십니다.

                                                                            *F.W 브라운(성경 신학자)*

* 13:5*~>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교회*, 미혹하는 자들과 보수거짓선지자들을 조심하도록 경고받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이용하여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은, *교회*를 배척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 미혹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한 자들에 대해, *예수님*은 경고하고 계십니다.

                                                          *척 스미스(갈보리채플 담임목사님)*

* 13:33*~>*항상 깨어*있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같이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전신갑주를 입고, 기도하는 가운데* 죄에 대해 *깨어*있으십시오. 시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육신에 대해, 마귀에 대해 *깨어*있으십시오. 영혼들을 위해, 열심과 관심을 가지고 *깨어*있으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까지 인내하며 *깨어*있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오실 때 여러분을 부르실 것이며, 여러분은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있을*것입니다.

            *그레탄 귀네스(영국 성경학교 창시자, 리빙스톤 내지선교회 설립자)*

* 14:8,9*~>이 여인처럼, *주님*을 위해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바칩시다. 세상에서 우리의 지위가 낮거나 우리의 수단이 형편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처럼 우리의 힘을 다합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주님*의 책에 기록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끝까지 헌신합시다. 마지막 날에 받을 *주님*의 칭찬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은 모든 조롱과 고난을 보상하고도 남을*것입니다.

                                                                           *J.C. 라일(청교도 설교가)*

* 14:16*~>*들은 대로 행하는 순종은, 대단히 놀라운 행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할 때,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고 순조롭게 돌아갑

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덧칠을 하거나 *주님*의 지

시를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근본적으로, 당신은 순종하는

람입니까? 아니면 주제넘게 훈수를 두는 사람입니까?

                                                                          *유진 피터슨(영성신학자)*

* 14:22*~>계약의 표적은, 그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또 우리를 위해 시행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갈보리의 약속들이 바로 우리들에게 주어지고 있으며, 또 우리들을 위해 지금 시행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내 몸이라.* *주님*, 두 손에 그 자신을 받쳐 들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 *주님*은 얼마나 사랑이 많으십니까?

                                                                                *일렉 모티어(강해설교가)*

* 14:34,41*~>*큰 고뇌 가운데 있는 자신과 함께 제자들이 깨어 있기를*바라시는 마음으로, *예수님*은 몇 번이고 제자들 곁에 다시 오셔서 자고 있는 그들을 애처롭게 깨우십니다. 이와 같이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 *아들*, 여느 인간들처럼 동정과 연대감을 갈망하셨습니다. 잠에서 깨어 부끄러운 얼굴을 든 제자들을 향해,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하시며, 여전히 부드럽게 대하시는 *주님*, 참으로 다정하며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루이스 뱅크스(강해설교가)*

* 14:50*~>제자들이 이렇게 형편없이 무너져 가고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대속적 고난을 당당하게 대면하고 계셨습니다. 훗날 바울사도의 고백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시는 역사가 진행되는 시점인 것입니다.

                                                      *유 승원(훼잇빌 한인장로교회목사님)*

* 14:72*~>시몬 베드로는, 많은 실패 후에 *주님*을 모른다고 맹세와 저주를 하면서, 인생의 밑바닥까지 갔습니다. 그가 *주님*의 보시는 곳에서 밖으로 나가 비통하게 울었을 때, 그것이 자기에게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토기장이는, 낙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베드로의 설교로 3000명이 *하나님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오스왈드 샌더스(OMF 이사, 설교사역자)*

* 15:15*~>*주님*이 우리보다 뛰어나셨기에, 상대적으로 고난이 약했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품이 섬세할수록, 모든 아름답고 참되고 법적이고 옳은 것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성품이 민감할수록, 거짓된 소리들의 불협화음이 더 거슬리는 법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이라는 황송한 사실에 가장 거룩한 두려움*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조지 맥도날드(스코틀랜드의 목사님, 저술가)*

* 15:32*~>모든 죄는 *십자가*에서 단번에 구속되고, 타락은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보수의 사탄에 대한 모든 부채와 아담의 타락으로 내려졌던 모든 선고는 *예수님*의 못에 의해 찢겨지고 말소되고 폐기되었습니다.

                                                    *진젠도르프(모라비안 형제단 창시자)*

* 15:34*~>*예수님*, 우리를 위해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보수의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습니다. *예수님*,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기에 그때는 *하나님아버지*와 충만한 교제를 누리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이유를 아셨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들과 그 이유(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됨)의 관계를 알아보게 하시려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월터 메이어스(강해설교가)*

* 15:43*~>배척받으시고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처형되신 *예수님*편에 서는 일은, 지금까지 요셉이 쌓아올린 사회적 지위를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 있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 자기가 *그리스도* *제자*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분(=*하나님*)앞에 떳떳이 서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신 *살아계신 *하나님**앞에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 (=요셉)는 모든 것을 걸기 시작합니다. *이 동원(지구촌 침례교회 원로목사님)*

* 16:1,2*~>*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믿음*을 잃은 채 희망을 포기했지만, *예수님* 사랑하기를 그칠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은 *살아계신 주님*께 인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친구를 약품 처리하여 썩지 않게 보존하려고 무덤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이 믿음보다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이 여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 콕스(성경신학자)*

 

* 1:35*~>*예수님*께서는 동정녀에게서 나셨기 때문에, 원죄라고 불리는 보수의 죄성을 물려받지 않으셨고, 그리하여 그분의 인성은 오염되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 그분의 행동이나 태도, 동기, 욕구에는 전혀 흠이 없으셨습니다.

                                                *제임스 패커(리젠트칼리지 조직신학 교수님)*

* 2:7*~>*그리스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태어나게 하시려고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자신의 *성령*을 주시려고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으셨습니다. 우리를 낙원에 뉘시려고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나라(천국)*로 데려가시려고, *하나님나라(천국)*에서 내려오셨습니다.                                   *토마스 왓슨(청교도 저술가)*

* 23:11*~>헤롯과 그의 군인들이 *예수님*께 이러한 옷을 입힌 것은,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능멸하고 모독하고자 함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역설적으로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숨겨진 섭리에 따라, 고난 후에 *예수님*이 받게 될 찬란한 부활의 영광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유 상섭(총신대 신약학교수님)*

* 23:25*~>바라바의 석방은, 진보복음의 구원계획을 놀랍게 예표합니다. 보수의 죄 있는 자가 풀려나고, 죄 없는 자가 사형에 처해집니다. 우리 모두는 본래 바라바와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는 악하고 보수의 죄가 많으며, 정죄를 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 대신에,  *진보의인*이 보수의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다*하십니다.

                                                                   *J.C 라일(복음주의 설교가)*

* 23:27*~>만일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시는 *구세주*를 본다면, 내 영혼도 경건한 이 여인들과 합류하여 함께 울 것입니다. 그곳에는, 슬퍼해야 할 참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보수의 죄가 채찍이 되어 *예수님*의 거룩하신 어깨에 상처를 내었고, 나의 보수의 죄가 가시 면류관이 되어 *예수님*의 이마에 피가 흐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찰스 스펄전(청교도 설교가)*

* 23:32,33*~>우리는 세(3)십자가 가운데, 하나에 못 박히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십자가는, 소망 없는 캄캄한 밤을 바라볼 뿐입니다. 두 번째 십자가는, 무덤 너머 *하나님* *낙원*을 바라보는 정도입니다. 세 번째 십자가는, 주권적인 구원의 *주님*의 영광의 보좌의 존전, 곧 우리가 그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려 한다면, 그분(=*하나님*)과 함께 누릴 보좌를 바라봅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그분(=*하나님*)의 보좌에 참여하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2:20*.                        *윌리엄 로버트 폴하머스(강해설교가)*

* 23:46*~>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가장 높은 신뢰를 보여 주십니다. 첫째, *예수님*,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를 신뢰하셨습니다. *예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과 너무나 가까이 계심을 느꼈기에, 자신의 영혼을 즉시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둘째, *예수님*,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셨습니다. *예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영혼을 인도하실 수 있는 전능한 능력이 있다고 확실히 믿으셨습니다. 셋째, *예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셨습니다.

                                                                       *데이비드 토머스(강해설교가)*

* 23:52,53*~>*예수님*의 몸을 장사 지내면서, 아리마대 요셉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 몸도 장사 지낸 것입니다. 이때까지 *예수님*의 숨은 제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은, 그 행위를 통해 *생명* *영광*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기민족으로부터 자신을 영원히 분리시켰습니다. 그는 다시는 보수화로 변질된 유대교의 일원이 되지 않고, 그것과 반대되는 삶을 살면서 *예수님*을 증언했을 것입니다.                        *윌리엄 맥도널드(성경주석가)*

 

*고전 1:2*~>성경은, 그리스도인을 일컫는 4가지 이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구원에, 필수적인 4가지 기본은혜에서 취한 것입니다.  *a.*성결*이 있다는 측면에서 *성도*라는 이름, b.*믿음*이 있다는 측면에서 *신자*라는 이름, c.*사랑*이 있다는 측면에서 *형제,/자매*라는 이름, d.*지식*이 있다는 측면에서 *제자**라는 이름이 사용됩니다.

                                                                          *토마스 풀러(영국신학자)*

*고전 1:17*~>*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수고를 감당하신 것은, 나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속량하여 흠없고 온전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나를 위한 복, 내가 벗어나야 할 곳들로부터의 구원만을 요청하진 않습니까? 바울의 유일한 열정은,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는 상처, 실망, 고난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복음전파에 대한 헌신으로, 그는 확고부동할 수 있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진보복음주의 순회설교가)*

*고전 1:27~29*~>우리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 자신의 계략과 방법등을 지나치게 많이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비우시고 낮추셔야 하며, 죽음의 티끌까지 내려가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낮아져야만, 우리는 위로와 도움을 갈구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우리를 일어나게 하시며 그분(=*하나님*)의 힘을 부여하십니다. 보수죄악으로 물든 이 세상은 적자생존의 이론을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소외된 자에게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십니다.

                           *F.B메이어(신학자, 이사야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저자)*

*고전 2:2*~>부요함도 자랑도 끝이 나며, 허영도 시들어 버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아는 지식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온갖 보수의 유혹이 당신으로 하여금 이 진리로부터 떠나게 하려 할지라도, 이 진리를 당신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우리를 비웃던 사람들이 그들의 보수의 죄를 부끄러워할 때, 우리는 들림을 받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저 하늘의 해와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조지 휫필드(칼빈파 감리교창시자)*

*고전 2:9*~>광막한 창공을 바라볼 때에, 당신은 그 모든 빛나는 천체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온 우주의 한 변두리에 불과합니다. 변두리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 중심의 아름다움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앉으신, 그 보좌의 발등상은 어떠하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볼 수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윌리엄 섹커(청교도신학자)*

*고전 3:3*~>시샘하고 미워하며 다투는 환경에서는, 교회의 부흥과 발전이나 개인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장점이나 가치있는 일들은, 바로 교회의 자산이며 보화입니다. 그 일들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며 더욱 개발되도록 격려할 때, 교회가 발전할 뿐 아니라 교회에 속한 성도도 발전하며 사랑과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정규남 목사님(광신대학교 총장님)*

*고전 3:11*~>기도는 반드시 약속을 토대로 삼아야 하지만,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우리의 기도보다 폭이 많이 넓습니다. 역삼각형 건물을 쌓더라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토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프랜시스 리들리 하버갈(영국시인, 찬송가작사가)*

*고전 3:18*~>이 시대의 지혜는, 언제나 영적인 것을 잊은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지혜입니다. 바울은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시대의 기준에 따라 지혜롭다고 자만하고 있다면, 그는 차라리 무식하다고 고백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 전적으로 물질영역에 속한 이 지혜는 그 너머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미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켐벨 몰간(강해설교가)*

*고전 4:14*~>아버지가 자녀의 잘못을 교정할 때, 제일 먼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잘못에 대해서 부끄러움과 분개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근본적인 목적은, 자녀가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자신의 목적이 고린도성도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고린도성도들)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권 성수(대구동신교회담임목사님)*

*고전 5:6,7*~>성적인 보수의 부도덕은, 보수의 죄로 들어가는 문턱입니다. 문턱 안쪽에는 보수의 부도덕이 있으며, 바깥쪽에는 순결함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보수의 죄와 보수의 거짓, 보수의 속임수, 보수의 탐닉, 수치 등이, 다른쪽에는 진보의 자유와 진보의 정직, 진보의 투명, 깨끗한(=진보의) 양심이 있습니다. 보수의 부도덕에 매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영역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거룩함 안에서 자랄 수 없고 *주님*을 섬기는 삶에 능력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브루스 윌킨슨(WTB 대표)*

*고전 6:11*~>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확실한 과정이며, 아무도 내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성화* *그리스도*안에서 자라가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조금씩 변화되는 평생의 과정입니다. 보수의 옛 사람을 벗고, *진보* *새 사람*을 입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의 당연한 고백입니다. 내게 그런 고백이 없다면, 구원받은 삶이 무엇인지 잊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오크힐스그리스도교회목사님)*

*고전 6:12*~>어떤 한 가지 행동을 함으로써 다른 행동에 제재를 받는다면, 그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한 일입니다. 다음날 중요한 경기를 앞둔 선수가 밤늦게까지 음주가무를 즐겼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경기에서 무참하게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마신 술로 제재를 받아서, 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김 서택(대구동부교회목사님)*

*고전 7:7*~>**하나님*, 친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본성을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 *결혼*제도를 확립하셨습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교회(*하나님*의 가족)를 교제의 장소로 제시했습니다. 모든성도는, *하나님* *가족*에 속합니다.* 결혼생활이든, 독신생활이든 모두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이자 소명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사람*이든, 혼자 외롭게 고독하게 사는 사람이든, *하나님* *가족*이 됨으로써 기쁨과 만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바라 휴즈(여성의 경건훈련의 저자)*

*고전 7:14*~>어느 한쪽이 불신자인 경우에도 이혼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믿지 않는 자가 믿는 성도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의 시초는, *구원*입니다. 그래서 거룩이라는 개념을 문자 그대로 도덕적인 거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믿지 않는 남편 혹은 아내가 믿는 아내 혹은 남편 때문에 *예수님*믿고 거룩한 성도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동원(지구촌침례교회 원로목사님)*

*고전 7:40*~>바울이 *나도 *성령*을 소유*한다고 강조한 것은, 삶의 모순에 빠진 고린도성도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 *성령*을 소유한 사람들이라면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답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그들 앞에서,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인지 자신의 삶을 통해 본을 보이고자 합니다. (=바울), 자신의 생각이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성령*을 의지하여 판단한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 한수(총신대신대원 신약학교수님)*

*고전 8:1*~>여기서 지식이 교만하게 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는 지식이 교만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식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머리에만 있고 마음에는 사랑이 없을 때 그런 지식은 공허한 인플레이션, 교만과 허영을 산출한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고린도성도들이 주장하듯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권 성수(대구 동신교회담임목사님)*

*고전 9:11,12*~>여기서 바울이 고린도성도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뜻을 몰라주어서 섭섭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를 자기가 개척했으니까 이제는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대한 권한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충분히 성장한 후 스스로 바울의 사역의 중요성을 깨달아 동참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서택(대구동부교회목사님)*

*고전 9:16*~>*하나님*의 부르심은 *구원받는*것이지, 거룩하게 되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이 거룩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선포를 위한 소명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하나님*께 사로잡혀서 맡겨진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삶 속에서 모든 일을 그 목적에 맞추시며, 모든 에너지를 그 목적으로 모으십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진보복음주의 순회설교가)*

*고전 9:27*~>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방해꾼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불성실한 나, *주님*의 뜻을 행하는 데 거역하기 쉬운 나, 내가 가장 다스리기 힘든 사람입니다. *주님*을 마음으로 섬기고 목숨을 다하여 섬겨야 할 내가, 겉모습의 성공에 만족하며 안주하기를 좋아하고 있음을 봅니다. 바울사도가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게 했다면, 나야말로 이 말씀에 꼭 붙잡혀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홍 정길(남서울은혜교회 담임목사님)*

*고전 10:12*~>신앙을 가진 자처럼 말하지만, 그 행동과 말이 신앙적이 아닌 사람은 신앙이 죽은 자입니다. *신앙이 살아있는 증거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기갈을 들 수 있습니다. 조화는 먼지만 털면 되지만, 살아있는 꽃은 물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신이 이미 온전히 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 있다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될*것입니다.

                                               *반다이 쓰네오(*말씀과 삶의 만남*저자)*

*고전 10:26*~>바람과 비와 심지어 당신과 나까지도, 그분(=*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지리와 문화를 넘어 중국과 러시아, 모든나라가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그분(=*하나님*)의 주권적인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와 친구와 환경과 원수까지도 그분(=*하나님*)의 손에 잡힌 채, 그분(=*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도, 오늘의 도전도, 내일의 놀라움도 모두, 그분(=*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찰스 스윈돌(달라스 신학대학원장님)*

*고전 11:1*~>과거에 거룩하게 살다 간 분들에 관한 글을 읽어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품었던 뜨거운 마음을 곧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울었고, *하나님*을 찾기 위해 낮이든 밤이든 때를 얻든 못 얻든 씨름했으며, 마침내 *하나님*을 발견했을 때는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랐습니다.                                                                            *A.W 토저(영성 신학자)*

*고전 11:24*~>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영원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구세주*를 어찌 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 기억속에 영원히 거주할 주인으로 모셔야 할 그분(=*예수님*), 우리는 마치 하룻밤 묵어가는 방문객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일과 다른 피조물에 마음을 빼앗겨 *주님*을 잊고 있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 흘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예수님*)을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찰스 스펄전(진보복음주의 설교가)*

*고전 12:4~7*~>*성령*, 모든성도에게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지체는, 교회 안에서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침과 도움을 받습니다. *성령*의 가장 큰 목적은,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다른지체들을 도와 *그리스도*를 닮아 성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각 지체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헨리 블랙커비(영적 리더십 저자)*

*고전 12:12*~>초석과 받침대가 없는 건물은, 쉽게 무너져 내립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삶이 견고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지지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원이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매형제들의 사랑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낙심될 때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서로 지지해 주며 격려해 주는 교회를 가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릭 워렌(새들백교회 담임목사님)*

*고전 12:22,23*~>인간적인 타락한 생각으로는, 조금도 기대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영적인 은혜와 영적인 은사를 받아,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은 이런 일을 통해 *주님 자신*의 능력을 보이시며, 특히 *주님 자신*의 어느 한 자녀를 무시하는 우리의 보수적인 태도에 일침과 경고를 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25:45* *마이클 그린피스( OMF국제총제)*

*고전 14:12*~>우리는 은사를 바랍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영적으로 도움되는 요소를 *주님*께 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진보적 원리가 아닙니다. 은사를 바라는 데 있어서 참된=진보적인 원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그 은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켐벨 몰간(강해설교가)*

*고전 14:22*~>앗수르(=앗시리아)방언은, 옛날 유다의 불신앙=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심판으로 주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도 방언은, 불신자를 위한 *주님*심판의 표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언은, 순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깊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예언을 중요시하게 됩니다. *정 규남(광신대학교총장님)*

*고전 14:33*~>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돌보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여러분을 위해 죽게 하셨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필요한 힘과 용기를 얻기 위해 항상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삶은 때로, 우리를 어지럽히고 압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평의 *하나님*, 여러분을 돌보고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빌리 그레이엄(진보복음주의 순회설교가)*

*고전 15:10*~>진보의 좁은 길에서 행하는 모든 발걸음은, 장래=미래의 은혜에 의해 계획되고 장래=미래의 은혜로 말미암아 힘을 얻습니다. 진정한=진보성도는, 그 길을 행할 때에 항상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주셨고, 그 은혜가 나를 본향으로 인도하리라. 아멘.***

                                                      *존 파이퍼(베들레헴 침례교회담임목사님)*

*고전 15:14*~>우리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예수님*의 인성을 믿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신성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보수의 죄와 보수의 죽음과 보수의 질병과 보수사탄을 이기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시고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과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는 것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김 연택(인천 일심교회담임목사님)*

*고전 15:20*~>*예수님*, 자기를 흩어 나누어 주며 자신을 점점 소멸시키고 마침내 육신의 죽음까지 내주는 하늘의 가치를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땅뿐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삶은 하늘의 소망을 위한 과정이지, 인생 그 자체의 최종 목적지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김 진홍(두레교회담임목사님)* 

*고전 15:58*~>보수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 *부활*,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이 사시도록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안의 불안정과 불확실함을 막아 줍니다. 부활은 우리의 믿음에서뿐 아니라, 사역에서도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해 주며 사역에 위대한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앎(체험적인 앎)으로써 오는 기쁨으로 가득찰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을 위해 지극히 작은 일을 할지라도, 그 일은 *주님*께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밀드레드 스탬(*여호와*는 나의 목자 저자)*

*고전 16:10*~>바울은, 고린도성도들에게 디모데를 사람으로 보지 말고, (=디모데)가 하는 일을 보고 존경하라고 추천합니다. 사람이 그가 하고 있는 직무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가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직무가 가진 위엄처럼, 위대한 위엄은 또 없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성경주석가)*

*고전 16:13,14*~>*믿음에 굳게 서라*는 권면은, 거짓=보수 선지자들에 의해 유혹을 받고 있던 고린도성도들의 처지를 생각할 때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성숙의 표시이며 어린이들은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근면함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데이비드 라우리(달라스 신학교교수님)*

 

*고후 1:10,11*~>우리는 연약한 성도이므로, 큰일을 하지 못하니까 기도를 해 봐야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바로 우리의 중보기도 사역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항상 자신(=*주님*)의 그늘에 두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프랜시스 리들리 하버갈(찬송가작사가, 영국여류시인)*

*고후 1:22*~>우리마음에 계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보증이요 담보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자신(=*주님*)의 약속을 봉인하는 것이며, 언젠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것임을 보장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그 기쁨을 지금 당장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빌리 그레이엄(진보복음주의 순회설교가)*

*고후 2:11*~>보수사탄의 궤계를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할 경우, 우리는 그놈에게 이용당하기 쉽습니다. 그놈은 거짓의 아비이며, 속이는 자요, 광포한 파괴자요,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입니다. 또 그놈은 낙심의 씨를 뿌리며, 성도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피하도록 속삭입니다. 보수사탄을 대적하는 최선의 방비는, **주님*과의 거리낌없는 밀착된 교제 가운데 살아감으로, 거룩한 성품의 보호막으로 자신을 두르는*것입니다.

                                                             *윌리암 맥도날드(성경학자)*

*고후 3:2*~>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세상으로 보내 모든사람들이 읽도록 하신 편지입니다. 또한 그들은, 모든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기도자들입니다. 기도자가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그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며, 그것이 생활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늘 만나며 살았던 사람은, 특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특별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닉 해리슨(숭고한 기도 저자)*

*고후 3:18*~>*어느 날 한 방울의 물이 낙수통에 떨어져 오염되었습니다. 그 물방울은, 자신이 깨끗이 씻겨 투명해지길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그 탄식이 하늘에 전해지자 그 물방울은, 태양의 따뜻한 손길에 의해 하늘로 들려졌습니다. 점점 높이 옮겨져, 마침내 아름다운 산 정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눈이 되어서,* 이 이야기는, 순결한 형상으로 변화되길 갈망하며 울부짖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비유합니다.

                                                          *J.R 밀러(미국 장로교목사님, 신학자)*

*고후 4:3~6*~>자연인의 눈에는, 진보복음의 중요한 진리가 낯설고 어둡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영적현실의 탁월함과 신성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능력을 가질 때, 진보복음의 진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 영적 지각력을 소유하게 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부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세주*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진보복음의 영광스런 광채를 통해 마음이 밝아져야만, 영적구원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청교도설교가)*

*고후 4:16*~>우리의 속사람은, 성장해야 합니다. 속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진보복음을 전하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노력이나 긴장이 없는 속사람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의 속사람이 성장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양분,  *하나님* *말씀*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합니다.

                                                                *정 규남(광신대학교총장님)*

*고후 5:8*~>*영화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연합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따라서 *영화에 대한 소망은, 오늘 성화의 삶을 살면서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슴벅찬 희망*이 됩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재림신앙*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날에 누릴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며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김 남준(열린교회 담임목사님)*

*고후 5:20*~>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시는 것을 우리도 가장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잃어버린 *하나님자신*의 자녀들을 다시 집(=천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해 우리를 보내십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사가 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릭 워렌(새들백교회 담임목사님)*

*고후 6:17*~>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으면, 옛날의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어떤 꿈이나 귀에 익은 소리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한 분만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관계들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처럼 자신을 버리고 *성별된 삶을 사는 자신의 자녀들의 마음에 영원한 빛*이 되어 주십니다.                                  *F.B. 마이어(영국 신학자)*

*고후 7:3,4*~>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하나님* **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음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서로를 아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교회나 작은 모임에서 서로를 만나고 도와주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 배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고립된 성장은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함께 자라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니키 검블(런던 Holy Tirnity Bromplon교회 사역자)*

*고후 7:13*~>그들이 어떻게 회개했고, 옳은 일을 행하는 데 얼마나 큰 관심과 열정을 보였는지 디도가 말했을 때, 바울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편지를 쓴 목적이 잘못한=보수주의자들을 꾸짖고 그 잘못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고린도교회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함을 확신시켰습니다. 이처럼 보수의 죄 된 것과의 분리를 실천하고 감사와 사랑을 보일 때, 깨어진 관계는 회복될 것입니다.

                                                          *워런 W. 위어스비(강해설교가)*

*고후 8:9*~>거룩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풍성한 부를 나누어 주시며, 우리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가난해지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와 교제를 나누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머물러 계시고, 우리는 *주님*의 구원을 받지 못한 채 멸망 가운데 있다면 그분(=*주님*)과 우리의 교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로우신 *구세주*께서 자신의 온전함을 주시며, 죄인인 우리가 그분(=*주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음으로써 서로 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찰스 스펄전(진보복음주의 설교가)*

*고후 8:16*~>디도는, *하나님*께 고무를 받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경건한 애정이 *하나님* **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역자들을 일깨워 *하나님*의 백성의 곤경을 덜어 주도록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의 증거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존 칼빈(종교개혁가)*

*고후 9:8,9*~>분명 *하나님*, 후히 드리는 자녀들에게 풍성한 공급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 기껏 우리 심령을 동하여 남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을 주신 뒤, 그 자원을 공급해 주시지 않는 분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나눔의 근원은, 그분(=*주님*)의 충만한 은혜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공급으로 인해, 우리의 나눔은 그분(=*주님*) **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샘 스톰즈(메트로교회 협동목사님, Grace 훈련center 대표)*

*고후 10:4~6*~>*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의 이론은 하늘 높이 치솟은 마천루와 같아서 *하나님*아는 것을 방해합니다. 사람이 이론을 내세우기 시작할 때 그의 생각은 포위를 당하며, 따라서 *하나님*께 자유롭게 순종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순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론과 싸우기 위해 이론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치를 따지는 정신적인 성향은 영적인 무기,  *하나님*의 능력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워치만 니(중국의 신학자)*

*고후 10:17*~>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의 진보와 그분(=*주님*)의 말씀에 대해 더 많아진 지식을 강조하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얻었던 성취된 업적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업적들은, 죄인들을 환영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주님*)의 손은 성취자가 아니라 회개하는 자,  *내가 드릴 것은 없고, 오직 십자가에 의지할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고든 맥도날드(Grace 채플 담임목사님)*

*고후 11:2*~>중매쟁이의 사명은 소개를 시켜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부를 지속적으로 보살핌으로써 최고의 상태에서 신랑과 결혼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고린도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진보복음으로 기뻐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짓보수복음=바람둥이가 나타나서 성도들을 다른 길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이때 바울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지금 고린도교회에 갖고 계신 사랑으로 말미암은 질투심이 생겨나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김 서택(대구동부교회 담임목사님)*

*고후 11:13,14*~>보수사탄이 거짓을 사용하는 것은, 그가 완전히 패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보수사탄이 가진 것이라고는 거짓뿐입니다. 보수사탄이 그토록, 거짓말하는 데 능숙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보수사탄의 작업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더욱 보수사탄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보복음진리를 배우고 적용하는 법을 배울 때, 보수사탄은 그 영향력을 잃게 됩니다.                              *베스 모어(Living프루프 사역원설립자)*

*고후 11:23*~>바울의 대적들은, 그들에게 굴복한 사람들을 종으로 삼고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승리주의와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성품은 십자가에 못 박힌 종의 온유와 관용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신적존재이신 *주님*께서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그의 전도사역에서 구현하고 표현하고자 애썼던, 십자가의 메시지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폴 바네트(북시드니의 성공회주교)*

*고후 12:10*~>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좀 약하게 되고, 돈이 없게 되고,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면 쉽게 절망합니다. 그러나 진보적인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약해지거나 돈이 없거나 모든 면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강하기*때문입니다.                                               *길 자연(왕성교회원로목사님)*

*고후 13:5*~>참된=진보적인 성도는, 바르게 산다는 말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속에 사신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 적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여러분안에 계시지 않으면, 선한=진보적인 소원을 가지고 은혜의 방편에 계속 참여한다 해도, 바울의 견해에 따르면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이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조지 힛필드(영국의 청교도부흥사)*

 

* 1:4*~>*구원*은 우리 인간편의 선택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편에서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사로잡으심이요, 붙잡으심이며 정복하심*입니다. 우리의 수납과 자원은, 작용(action)이라기보다는 반작용(reaction)입니다. 결정권은, 항상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A.W 토저(신학자)*

* 1:18,19*~>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갖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덮고 있는 배일과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이 두가지 배일이 벗겨집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이 두가지 모두를 제거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관한 우리 지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J.I 패커(신학자)*

* 2:5~7*~>**하나님*께서 이 모든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제한시키신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이 우리가 원래 있어야 할 바른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행할* 때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께서 계셔서 나의 삶을 운전하실 때*입니다.

                                                                            *김 서택(대구동부교회담임목사님)*

* 2:13*~역사 속에서 소외되었던 *이방인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은혜*로 아웃사이더에서 *인사이더*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혁명적인 신분의 변화입니다. 자주 읽는 신데렐라 스토리 정도와 비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이전의 이방인, 무 할례, 언약의 외인, 나그네, 절망 소외 등의 옛 호적은 말소되고, 새로 만들어진 호적에는 **하나님*나라의 시민, *하나님*의 가족, 성도, 샬롬*등이 영구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하늘을 보십시오.               *유 승원(Fayettevlle 한인교회 동시목사님)*

* 3:13*~>*3:1*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옥에 갇힌 것을 밝힌 바울은, 마지막 이 구절에서 그(=바울)가 환란을 당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이처럼 놀랍고 영광스러운 복음의 이야기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투쟁과 고난과 감옥도 함께 받아들이는*것입니다.

                                *루이스 도넬슨(오스틴 장로교 신학대학원 교수님)*

* 3:20,21*~>우리의 생각이나 기도는 부족하여, 마땅히 생각할 바를 생각하지 못하고, 마땅히 구할 바를 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생각과 원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지 못하고 구하지 못한 것까지도 이루어 주십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기뻐하며, 믿음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변 종길(고려신학대학원 교수님)*

* 4:7*~>*그리스도* *교회*에는, 모든 종류의 일꾼들과 온갖 종류의 도구들이 필요합니다. 칼뿐만 아니라, 포켓, 나이프도, 망치만이 아니라, 도끼도, 톱뿐만 아니라 조각칼도, 마리아뿐만 아니라 마르다도, 요한 뿐만 아니라 베드로도 필요합니다.                   *JC라일(청교도 설교가, 주후 1816~1900)*

* 4:24*~>옷을 입다, 벗다. 라는 비유어는, 이런 문맥에서 바울사도가 자주 쓰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ONE)새 사람*, 즉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데 어우러지는 *새로운 인류* *창조*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죄 많은 보수의 관습과 보수 성향으로 이루어진 옛 사람은 한쪽으로 벗어놓고, 진보적으로 변화된 정신을 가진 새 사람을 입어야*합니다.                             *아이얀 컨디(영국 성공회 목사님)*

* 4:29*~>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 공백을 더러운 보수의 말과 희롱하는 보수의 말로 채우기 위해 애씁니다. 결국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언어의 순화나 행위의 교도나 사회개혁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더러운 보수의 말 뒤에는 *하나님* *은혜*, 희롱하는 말 뒤에는 기쁜 감사로 채워져야 할 엄청난 공백이 있습니다.              *존 파이퍼(베들레헴 침례교회 담임목사님)*

* 5:1*~>*본받는다, 본받는 자*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미메타이아*인데, *mimic(흉내내다)*이 여기에서 파생했습니다. 즉 똑같이 복사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군가를 모방하기 위해서는, 그와 더불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비로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됩니다. 그분(=*하나님*)의 태도가, 어떤지 알아야 닮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강해설교가)*

* 5:10*~>**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은,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무엇을 하는가? 보다 *무엇이 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능력 없는 사람은, 조금 밖에 일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조금 밖에 주시지 않았는데, 많이 하겠다는 것도 교만입니다. 어린아이의 최선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으며, 과부의 최선은 빈 병이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자신의 형편에서 *최선*을 다하기를*기대하십니다.

                                                    *하 용조(서울 온누리교회 원로목사님)*

* 5:23*~>남편들에게 복종(순종)해야 하는 책임이 아내들에게 부담스럽게 여겨진다면,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들을 사랑하라는 의무도 남편들에게도 똑같이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머리됨은, 지배보다는 돌봄을, 통치보다는 책임*을 나타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권력, 즉 지배권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그리스도*를 닮는 데*있습니다.                                 *존 스토트(신학자)*

* 6:11*~>**기독교*,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음(sitting)*으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기독교*,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합당하게 *행함(walking)*으로 계속됩니다. 실제적으로 *살아있는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하여 쟁취하신 터전에 *굳게 섬(standing)*으로써, 보수의 왕인 사탄, 마귀를 대적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워치만 니(신학자)*

* 6:23,24*~>바울사도의 마지막 인사말에는, *평안, 믿음, 은혜, 사랑*등이 언급됩니다. 이중 두드러지는 것이, *은혜* *평안*입니다. **하나님* *인간*사이의 *화해*라는 의미로서의 *평안*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업적이며, *은혜* *예수님*께서 그 사역을 하게 되신 이유이자 방편*이 됩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존 스토트(신학자)*

 

* 1:1*~>*성자(SainT)*라는 개념은, *주님*의 구속의 *은혜*로 세상과 *

별된 사람*입니다. 지금 성자라고 불리는 무리 안에는 얼마 전까지 점치던 노

예 소녀와 잔인무도한 간수도 들어있습니다. *교회*안에서, 서로 높다고 싸우

던 유오디아와 순두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가능성을 보고, 

인생의 장점을 기대하며 그 이름을 불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서는 *(=노예)*이라는 가장 낮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홍 정길(남서울 은혜교회 원로목사님)*

* 1:12*~>고난에 처한 상황 속에서, 선한 것을 찾기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에게 그 고난을 통해 선한 것을 이루어 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8:28*.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유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진리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가 되도록*하기 위함입니다.

                                 *찰스 스텐리(애틀란타 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님)*

* 1:21*~>*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 **에서 그분의 삶을 살아 나가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열심히 *그리스도*를 따르고 섬기며, *그리스도*를 닮으려 노력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이 아니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바울 자신안에서 사시도록 한 삶*입니다. 그분의 목적이 우리의 목적이 되고, 그분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이 되는 삶입니다.

                                              *조지 던컨(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상)저자*

* 2:6*~>*예수님*,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스스로 내려오심으로써, 타고난 지위를 버리셨습니다. 왕의 지위를 버리고 종의 모습을 취하심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버리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우리에게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법적인 지위를 버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와 같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와 같이 되셨고, 우리에게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 노예가 되셨으며,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니키 검블(런던 Holy Tirnity Bromplon교회 사역자)*

* 2:12,13*말씀에서의 구원은 자유라는 말로 대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것은 공을 세워서 얻어내는 특권이나 도달해야 할 목표물이 아니라, 탐색하면서 그 어느 것보다도 충만하게 누려야 하는 소유물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졌지만, 우리는 매일 그것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한 순간, 그 결혼은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지만, 평생 동안 탐색과 향유와 개발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알렉 모티어(The Message of Philppians)저자*

* 2:22,25*~>최고의 배우가 탄생하는 데 있어, 그를 돕는 스텝이나 조연들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바이올린의 거장들에게도 제2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 2*에서, 자신의 귀한 동역자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컴퓨터나 휴대폰, 팩스 없이도, 훌륭하게 사역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가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동역자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스튜어트 브리스코(엘름브룩 교회 은퇴목사님)*

* 3:14*~>**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을 통해, 바울은 당시의 올림픽 게임 같은 데서 사용되는 생생한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높이 설치된 시상대에서 우승자의 이름, 그의 가문의 이름, 그의 고향 등이 불리면, 그는 시상대로 올라가 통치자로부터 상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의미하는*것이고, 바울은 이 *하나님*의 초청을 위해 전심으로, 전력을 다해 경주했음을 고백합니다.

                                           *김 세윤(목사님, 풀러신학교 신약학교수님)*

* 4:5*~>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고 용서하는 것은, 관용의 소극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나 관용의 의미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즉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채워 준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그 속에 담겨있습니다. 용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줌으로써, 온전히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 동원(지구촌교회 원로목사님)*

* 4:11~13*~>빌립보 성도들에게 기쁨에 대해 열일곱 번이나 말한 바울은, 당시 감옥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바울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그는 행복했습니다. 이처럼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참된 행복은, 전적으로 외부적인 것과는 무관합니다. *가난하나 부하나, 폭풍이나 순풍이나 그리스도인이 늘 즐거워할 수 있는 까닭은 내부적인 것,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내적인 평안*에 근거한 것입니다.     

                    *조쉬 맥도웰, 보브 호스테틀러(신앙의 불순물을 걸러내라)저자*

* 4:18*~>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이 말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항시, *그리스도*의 풍성을 찬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최소의 것으로 최대의 자족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최소한으로 자족할 수 없는 사람은, 항상 부족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돌보아 오신 나의 *하나님*이 신실하고 풍성하신 분이기에, 아직 받지 못한 것까지도 *이미 받은*것으로 알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종수(목사님, 강해설교가)*

 

*딤전 1:10,11*~>*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이 메시지를 보존하는 임무는, 우리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바른 진보복음의 교훈을 지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완벽한 정화와 보수잘못의 치유를 제공하셨음을 선언하도록, 우리에게 위탁된 것입니다.

                                                                        *마이클 벤틀리(강해설교가)*

*딤전 1:17*~>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는, 전체를 보는 분명한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을 보아야 합니다. 그는 하늘이나 땅에서 건줄 자가 없어야 합니다. 그는 어떤 두려움도, 어떤 무지도, 어떤 필요도 없어야 합니다. 그는 어떤 한계도 없어야 하며, 무엇이 가장 좋은지 항상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결코 실수를 해서도 안 됩니다. 이런 자격을 갖춘 이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찰스 스윈돌(달라스 신학대학원장님)*

*딤전 2:1*~>중보기도에 게으른 것은, 경건한 생명의 결핍을 나타냅니다. 만일 그 생명이 우리 안에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면, 우리는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라고 촉구하는 그 맥박의 고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F.B. 마이어(신학자)*

*딤전 3:6*~>장로의 자격을 열거하면서, 바울은 믿음이 아직 어린 사람에게 이 사역을 맡기지 않도록 유의할 것을 당부합니다. 우리는 신앙적인 성숙과는 상관없이, 성공적인 사업가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에 있는 사람을 교회의 지도적 위치에 앉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감독의 직분은, 영적인 성숙과 경건한 경험에 의해 생겨나는 지혜(*성령*의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윌리암 맥도날드(성경학자)*

*딤전 4:15,16*~>바울이 제시한 삶과 목회의 지침은 이것입니다. a.무엇이든, 자기가 맡은 일에 옹골차게 집중해 온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작은 일에 전심전력할 때, 한 단계씩 더 높은 단계로 쓰임받게 됩니다. b.중단하지 않고, 끈기있게 꾸준히 계속해야 합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최후까지 계속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며, 성공의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김 진홍(두레교회 담임목사님)*

*딤전 5:1*~>교회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속한 어떤 사람이, 보수의 죄를 범했습니다. 이때,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동하며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다른사람을 꾸짖을 때, 우리는 마치 재판관이나 되는 것처럼 경솔한(=가벼운) 태도를 취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보수의 잘못을 범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면서 사랑으로 대하라고 우리에게 당부합니다.

                                        *피트 소머(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의 저자)*

*딤전 5:17*~>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지도자들을 존경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위치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말씀사역, 그 역할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말씀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이 변화를 받고 *하나님*을 향해 눈을 뜰 수 있게 됩니다. 지도자에게 인격적인 결함이 있다고 우리가 그의 역할까지 부정한다면, 부족한 그를 세우신 *하나님*의 방법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이 동원(지구촌침례교회 원로목사님)*

*딤전 6:9*~>기독교는, 우리의 타고난 욕구를 없애 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욕구를 통제하여, 바른(=*진보*) 대상으로 향하게 한다고 약속할 뿐입니다. 부와 명예의 경우에도, 기독교의 그 특성은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즉 기독교는, 우리에게 소멸될 세상의 보화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천국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윌리엄 윌버포스(영국의 정치가)*

*딤전 6:12*~>인생의 경주를 달리고 있는 바울을 따라, 디모데도 역시 그 경주에 들어섰습니다. (=디모데)는 바울 곁에서 푯대(=*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자기의 눈을 고정시킨 채, 중단하지 않고 달렸습니다. 그는 불안정, 소심, 패배를 이겨냈습니다. 디모데도 바울의 뒤를 이어, 선한 싸움을 싸웠음을 스스로 입증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옆에서 뛰고 있는 사랑하는 영적아들 디모데를 확신있게 바라보면서, 조용하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바울사도의 눈망울을 볼 수 있습니다. *케이 아더(미국 개혁신학교 조직신학교수님)*

 

*딤후 1:6*~>디모데가 두려움에 면역성이 있거나 자신이 겪었던 위험에 대해서는, 곧 잊어버리기 때문에 믿음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그 모든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에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을 의지하여 그와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스튜어트 브리스코(엘름브룩 교회 은퇴목사님)*

*딤후 2:2*~>우리는 녹슬지 않게 보존하려는 목적으로, 복음을 은행금고 속에 꽁꽁 숨겨 두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바울처럼 복음을 전함으로써, 고난당하더라도 우리는 모든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복음을 보전해야 합니다.                                                          *마이클 벤틀리(성경주석가)*

*딤후 2:15*~>당신이 믿는 것을 잘(or 올바르게)설명할 수 없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과 연구를 아끼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복음진리의 말씀을 제대로(or 올바르게)깨닫지 못해 평생을 영적빈곤 속에서 살지도 모릅니다. 복음진리의 말씀은, 고난을 통해 우리 것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우리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보진리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다시 설명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그것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활용하실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진보복음주의 설교가)*

*딤후 3:16,17*~>우리의 삶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우리가 이 전투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또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길이 표시되어 있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적의 모든 공격을 피할 길이 적혀 있고, 완전히 적을 멸할 수 있는 승리의 길이 적혀 있는 지도를 주셨습니다. 생명과 승리로 인도하는 지도,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김 선도(광림교회 원로목사님)*

*딤후 4:3*~>바른 교훈이, 언제 어디서나 틀림없이 위로를 주고 마음을 누구러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혈압을 정상적으로 유지시켜 주기 위해,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배경음악이 아닙니다. 바른 교훈은 단단한 음식입니다. 그것은 유쾌하지만 않지만, *영혼과 육신을 건강하게 하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유진 피터슨(, 리전트 칼리지 영성신학 교수님)*

*딤후 4:22*~>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축도하는 것은, 편지를 끝내기 위해 적합한 구절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단 1초도 살 수 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성도들이 실제 상황에서 누릴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싱가포르 트리니티신학교 교수님)*

 

*벧전 1: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언제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며 살아갈 특권과 함께 산(=살아있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좌절시키고 기만하는 세상의 헛되며 죽은 소망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생명력 있는 참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부활*, 현재와 미래에 걸친 모든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확실한 근거이며 정점입니다.            *김 연택(인천 일심교회담임목사님)*

*벧전 1:23*~>아버지가 어머니를 통해서 산파의 도움으로 나를 낳아 주신 것처럼, **하나님아버지*는 거룩한 *말씀*을 통해 *성령님*의 역사로 죄인인 나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압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이 내 마음을 두드리시는 것을 알고, 마음문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으로 거듭났다*는 의미입니다. *이 동원(지구촌교회원로목사님)*

*벧전 2:9*~>아름다운 덕을 선전한다는 것은, 자기자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만 진보복음진리를 안다는 식으로 교만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조용히 있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슬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를 섬길지 선택해야 합니다. 어제의 섬김이 오늘과 내일,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새롭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든 맥도날드(Leadership Joumal편집위원)*

*벧전 2:16*~>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보수의 악을 행하면서 핑계로 삼을 수 있는 방종이 아닙니다. 세도와 주장의 자유가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섬김의 자유입니다. 보수죄악의 쾌락을 누리는 자는, 자유로운 것 같으나 보수죄악의 노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보수=죄의 종에서 진보=의의 종으로 해방된 자들입니다. 권위에 순복하고 선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종은 역설적으로 참된 자유를 만끽합니다.

                                                                 *권 성수(대구 동신교회담임목사님)*

*벧전 2:21*~>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세상에서 행동하신 그분(=*그리스도*)의 방식 또한 받아들이도록 요청받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아질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같아지셨기 때문이며, 우리가 그분(=*그리스도*)과 동일시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수의 죄와 보수의 이기심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그분(=*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방법을 따르도록 이끄십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독일 신학자)*

*벧전 3:1*~>여기서 *말로 말미암지 않고*라는 말은, 말을 하거나 설명하기보다 *행동으로 증거를 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급자들이나 가까운 친척들, 가족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선한행동*을 통한 증거입니다.                                           *알란 스팁스(성경주석가)*

*벧전 3:12*~>어떤 일이나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기 전에 생각해야 할 점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가? 확고한 약속이 뒷받침된 것인가? 책임감을 가지고 드리는 것이어서 응답을 받기 전까지, 아니면 응답을 확신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드릴만한 그런 기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서 T. 피어슨(, 메트로폴리탄 침례교회 담임목사님)*

*벧전 4:10*~>*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한 행동을,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일을 한 것처럼 받아들이십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긴 것이, 결국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 것으로 판명되는 것입니다.             *진 에드워드 베이스(WORLD문화 편집인)*

*벧전 4:15,16*~>교회는 천국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서도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에 대해 말할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와 동시에,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전파하는 말은, 기독교공동체를 통해 실재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에 도전을 주기 위해서는 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찰스 랑마(리전트 신학교 선교학교수님)*

*벧전 5:5*~>사람들의 보수의 죄를 책망하여 양심을 일깨우는 일을 할 때는, 부드럽거나 온건한 태도를 취해서는 곤란합니다. 하지만 말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에는, 항상 겸손함과 선한 의도와 사랑과 동정심이 배어 있어야 합니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향기를 풍겨야 하며, 얼굴에 밝은 광채가 나야 합니다. 사역자들은 보수의 죄에 대해서는 사자 같아야 하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어린양과 같아야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청교도 설교가)*

*벧전 5:8,9*~>보수마귀의 관심은, 성도들이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데 있습니다. 보수마귀는 기도없는 연구, 기도없는 노동, 기도없는 종교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보수마귀는 그러한 수고를 비웃고, 그러한 데서 얻는 지혜를 조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는 두려워 떱니다.

                                                     *사무엘 채드윅(19세기 설교가)*

 

*벧후 1:12*~>베드로는, 당시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진보복음의 진리를 거듭 상기시키는 것이, 믿음 안에서 강해지게 하는 비결이라고 믿었습니다. 성도들의 안전과 최선의 방어책은, 그들이 소유한 진보진리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마이클 벤트리(성경주석가)*

*벧후 2:1*~>신앙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정체는 무엇입니까? 거짓=보수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파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거짓=보수 선지자들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말씀*이 아니라 그들 마음에서 나온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참된진보의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수=거짓을 담대히 거부하고 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 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님)*

*벧후 2:10*~>베드로는, 보수=거짓교사의 3가지 범죄를 꾸짖어 왔습니다. 그들의 훼방, 그들의 환락, 그들의 반역, 이 모든 범죄들은 교만과 정욕에서부터 나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종은, 겸손하며, 사람들을 섬기기를 구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종은, 칭찬과 보상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랑하고, 순종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워런 W. 위어스비(, 무디 기념교회 담임목사님, 강해설교가)*

*벧후 3:7*~>사도베드로가 앞에서 언급한 심판들은, 보수의 악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심판을 연기하시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구속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예고되어 왔던 그 심판은 분명히 실현될 것입니다. *코넬리스 반더발(성경주석가)*

*벧후 3:18*~>*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저 그리스도인으로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더욱 깊이 알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구원은 출발점*이지, 결승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래리 모이어(이반텔 전도협회대표)*

 

*1 1:3*~>사도요한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바를 저희에게 전하였다*고 말합니다. **전한다* *증거한다*는 말은, 보고 들은 바를 말로 증거*하는 것으로, 비슷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전한다*는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위임,  *권위**가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심으로써 그들을 목격자요 증인으로 만드셨고, 그들에게 권위적 위임을 주셔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제임스 보이스(목사님, 강해 설교가)*

*1 1:6*~>사도요한이, 독자들에게 조심하도록 경고하고 있는 보수거짓교사들은 크게 책망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성도들도, 정통교리가 *의로운 생활*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중심에 *진실함*이 있기를 원하시는데, 만일 이렇게 존재하기만 하면 그 진실함은 모든 생활 구석에서 스스로 나타나게*될 것입니다.             *F.F 브루스(신약학자)*

*1 2:8*~>말씀을 주신 범위에서 그 계명은 새롭습니다. 그것은 *선한 사마리인의 비유*(* 10:33~37*)에 나타나는데, 거기서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인종이나 계급에 구애없이 우리의 동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나 해당됩니다. 그 계명은 또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해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움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교리적 기독교는 언제나 옛 것이지만 *체험적 기독교는 언제나 새롭기* 때문입니다. *존 스토트(목사님, 신학자)*

*1 2:14*~>영적 갓난아이들은 체험을 즐거워하고, 영적 청년들은 자신의 지식을 즐거워하지만, 영적 아비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영적 청년으로서 *말씀* *아는*것과 영적 아비로서 *말씀*뒤에 있는 *하나님* *아는*것은 또 다른 일입니다. 영적 아비는, *하나님* *아는 지식*의 깊은 곳까지 탐사했습니다. 그는 단지 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시하신 *하나님*께 관해 개인적이고 체험적이며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존 맥아더(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담임목사님)*

*1 2:24*~>이와 같은 사도요한의 가르침은, 최고의 영성을 추구하기 위해 특별한 지식을 요구했던 당시 영지주의자들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영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지식의 소유자만 *하나님*과 통하는 것도 아닙니다. 특이한 경험이 요구되는 것도 아닙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영성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사도들이 가르친 *처음부터 들은 것* *믿고 따르는 단순한 그리스도인*, *영성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최 명덕(목사님, 건국대 히브리어학과 교수님)*

*1 3:1*~>사람의 완악한 마음에 감동을 주고 부패한 인성의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은 분명히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아 왔다는 확신*입니다. 잠시 있다 없어질 사랑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로부터, 공의로운, 그것도 공로나 자격이나 선함과 관련해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값없는 사랑을 받아 왔다는 확신입니다.

                              *호라티우스 보나르(복음전도자, 찬송가 작사자)*

*1 3:9*~>**하나님*의 거룩함 속에서, 그분의 의로움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그분의 거룩함은, 모든 보수의 죄를 불사르는 열정적인 불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죄에서 구별하시며, 또한 크신 사랑으로 인간들을 그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목사님, 성경 신학자)*

*1 3:22*~>실제적인 사랑의 행동으로 진보진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비난하던 자신들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고, 기도에 있어서 담대함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제인 C. 하지스(성경주석가)*

*1 4:10*~>*하나님*의 사랑은 식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사랑이 바로 그분(=*하나님*)에게서 샘솟는 것이라면, 내 사랑 역시 식지 않을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복음주의 순회 선교사)*

*1 4:20*~>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이웃을 사랑하도록 동기가 되어주는 것은,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 *만나는*것입니다. 어떤 이웃은 그리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그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진 에드워드 베이스(*평범한 일 속의 특별한 소명*저자)*

*1 5:3*~>*하나님*께 대한 *사랑*, 필연적으로 *순종*을 동반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 정서적 체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순종*입니다. 진정 *하나님*께 대한 것이든, 아니면 사람에 대한 것이든, **아가페*,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존 스토트(신학자)*

*1 5:21*~>*그리스도인은,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의 영혼을 추스르며, 순결하고 정결하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보다 다른 일들에 더 많이 마음을 기울이는 때마다, 우리는 영적인 간음의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사도는,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을 멀리하라*고 권고합니다.         *조지 휫필드(부흥설교가)*

 

*2 1:7*~>*기독교*신앙에서 가장 심오한 진리와 신비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오셨으며, 육신을 지닌 채 우리와 함께 고난을 당하시고, 육신을 지닌 채 *부활*하시고, *주님 자신*의 육신을 *성찬*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영성연구가, 심리학자)*

 

*3 1:3,4*~>*하나님* *진보진리*사이에는, 간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그 자체로 *진보진리*이십니다. *진보진리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야*하는 성경적인 긴박성은, *진보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하리라는 무서운 경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진보진리*에 대한 *사랑*, 멸망하느냐, 아니면 *구원*받느냐를 결정짓는 절대절명의 문제입니다.

                                      *존 파이퍼(베들레헴 침례교회 담임목사님)*

* 3 1:11*~>**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묘사된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며, 구속받은 인간의 인격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영생* *소유한 사람*입니다. *선한 삶은, 내면에 있는 *하나님* *생명*에 의해서만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런 삶의 모습은 아무리 위조하려고 해도 위조할 수가 없습니다.      *데이비드 잭멘(영국 성경교사, 콘힐 트레이닝 코스 책임자)*  

                                         

                                 * 마 라 나 타 *